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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4차투어 : 남서해안 모터사이클 여행기

  

   강원도 투어에서 돌아온 후에도 나는 아쉬움이 사라지질 않았다. 더 많은 길을 찾아보고 싶었다. 결국 나는 가장 사람손을 적게 탄 호남을 다녀오기로 했다.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바이크투어가 될 지도 모른다.

 

 

2003년 10월 19일

 

    오전 12:40 혜화동로타리의 주유소에서 바닥난 탱크의 기름을 가득채운후 거리게이지를 다시 초기화시켜 '0'에 맞추어 놓고 출발했다. 가득채우는데 9000원, 이제 300km를 달릴 수 있다. 이번에는 양화대교를 건너기로 하고 비원앞, 연대앞을 거쳐 계속달렸다. 그러나 가다보니 성산대교로 가는 길로 들어서 버렸다. 이제 시내주행도 자신이 생겨서 차량들과 보조를 맞추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같이 과속하게 되는 것이 좀 문제다. 어디로 가든 상관없다 생각하고 지도와 도로표지판을 번갈아 보며 계속 달렸다. 오후 1:35 신월IC에 도착하였으나 거기에서 길을 잃고 한참을 빙빙 돌았다. 인천쪽으로 빠르게 갈 수 있는 고속국도가 있었으나 이륜차 진입이 금지된 곳이었다. 제한속도가 90km로 표기되어 있었지만 차량들은 많이 밀집된 상태에서도 시속 110km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달려지나간다. 어쩔 수 없이 국도에서 나와 지도를 더듬거리며 목적지인 소래로 향해 갔다.

 

소래의 생태공원내의 갈대늪지. 멀리보이는 아파트단지를 비롯한 일대의 땅은 과거 모두 갯벌이었다. 지금은 모두 개발되고 일부만이 생태공원으로 보존되고 있다.

   이리저리 국도와 지방도를 따라 소래 근방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가 다 되어서였다. 소래근처에 다다라서 갈대밭이 눈에 띄어 그곳으로 들어갔다. 넓은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비포장된 도로를 따라 가로질러 옛날 염전옆의 작은 소로로 나가니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바이크를 세우고 같대밭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몇 컷 찍었다. 그런데 작은 시골길치고는 사람들의 왕래가 많다. 알고보니 소래생터공원이었다. 소로 안쪽으로 들어가니 더 많은 사람들이 보이고 단체로 와서 사진촬영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곳의 갈대밭은 공원을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남긴 것이다.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할 수 없다. 그런데 바이크의 시동을 걸기위해 열쇠를 꺼내려는데 열쇠가 없다. 아무리 뒤져도 없다. 아마도 갈대밭에서 노출계를 꺼낼 때 걸려나와 떨어진 모양이다. 큰일이다. 다시 갈대밭 갔던 길을 따라 한시간을 뒤졌다. 우거진 갈대밭에서 떨어진 열쇠를 찾는 것은 백사장에서 바늘찾기나 마찬가지다. 난감하다. 그래도 앞바퀴를 잠그지 않아 끌고 갈 수는 있으니 천만다행이다. 소래에는 수리센타가 없을 것 같고 인천은 나가야하는데 거기까지 끌고 가자니 한숨이 나온다. 이번 여행은 여기서 종치는 것 아닌가 별 생각이 다 든다. 순간 영화의 한 장면이 떠 올랐다. 자동차 키박스를 뜯고 선을 연결하여 시동을 걸던 장면말이다. 드라이버를 꺼내 키박스 아래 선을 뜯어내니 네 개의 선이 뜯겨져 나온다. 하지만 이리저리 연결해 봐도 중립을 나타내는 녹색등이 들어오지 않는다. 포기할까 하다가 선을 다시 연결하고 혹시나 싶어 킥스타트를 밟아보았다. 부르릉~ 이 기쁨, 늪에서 겨우 빠져나온 기분이다. 라이트와 윙커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이제 큰 걱정은 없다. 수리는 가다 나중에 해도 된다. 공원을 돌아나와 대부도 여행때 봐두었던 논현동 재개발지역으로 급히 달려갔다.

 

노을속의 논현동. 곧 사라질 정경이기에 오늘따라 노을은 더 붉고 아름답게만 보인다.

   고개를 넘어 논현동에 도착하니 여섯시, 해가 많이 기울었다. 저번보다 집들이 더 많이 철거되었다. 그래도 아직도 남은 집들에서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 같다. 동네를 돌아보는데 작동하지 않는 라이트와 윙커가 신경쓰인다. 사람들에게 센터있는 곳을 물어 인천으로 달려갔으나 부품이 없다는 말을 듣고 논현동으로 다시 돌아왔다. 곧 사라질 마을 서편으로 석양이 물든다. 이제 숙소를 정해야 한다. 난 특별한 사정이 없는한 숙박업소를 이용하지 않는다. 편하긴 한데 재미가 없고 여관 잘못 잡으면 옆방 소리에 밤새 잠을 설치는 수가 있다. 물론 즐거운 맞불작전도 있지만 이런 여행은 신성한 기분으로 해야 한다. 마을을 이리저리 돌다가 창문이며 문들이 온전한 집을 하나 찾았다. 오늘은 이집이 쉴 곳이다. 난 곧 사라질 이집의 마지막 손님이 되기로 했다. 짐을 풀어놓고 바람쐴겸 남동공단쪽으로 걸어나가 한 PC방에 들렀다. 들어가니 동남아노동자인듯한 20대들이 몇 명 보인다. 한시간 조금 넘게 메일 확인하고 신문 좀 보고 나오려니 주인이 대뜸 3000원을 부른다. 왜 이리 비싸냐하니 이천원만 달라고 한다. 경멸하는 눈초리로 PC방 주인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이런식으로 저 힘없는 외국인노동자들을 바가지 씌우나보다.

 

   다시 논현동으로 돌아가는 길에 난 사고를 하나 바로 눈앞에서 목격하게 되었다. 사람도 아무도 없는 남동공단사거리에서 건널목을 터벅터벅 건너는데 내 등 바로 뒤로 승용차 한 대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 사거리를 교차되는 방향으로 빠르게 통과하던 트럭의 뒤를 옆에서 받아버렸다. 난 즉시 그곳으로 달려가 119에 전화를 했다. 운전자는 기절을 한 상태고 옆에 있던 여자는 남자친구 이름을 소리치며 어쩔줄 몰라한다. 다행히 다치진 않은 것 같다. 트럭의 앞이나 중간을 들이받았으면 그 둘은 즉사했을 것이다. 정말 0.01초 차이로 살았다. 물론 운이 더 좋아 0.01초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비켜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흥분한 트럭운전사가 달려와 자기는 신호등을 지켰다고 소리친다. 곧 남자는 깨어나서 걸어나왔지만 모양을 보니 술에 완전히 취한 상태다. 술에 취해 말도 제대로 못한다. 곧 경찰들이 달려오고, 나말고 또 다른 한 목격자도 왔는데 원인은 술취한 승용차가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시속 100km 넘게 과속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요일 밤이라 술에 취한 상태에서 졸음운전한 것 같다. 경찰 하나가 목격자인 내게 와서 상황을 물어보는데 나를 대하는 태도가 마치 무슨 범죄자 취조하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지 않다. 이래서 사람들이 신고를 잘 하지 않나보다. 그런데 갑자기 길이 무서운 존재로 보이기 시작한다. 아무도 없어 보이던 텅빈 사거리에서 너무나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논현동의 폐가에 돌아와 에어매트위에 펼친 침낭속에 들어가 내일 계획을 생각해 본다. 바이크 열쇠를 잃어 버리는 바람에 많이 지체되었다. 원래 계획은 저녁에는 온양에 도착했어야 했다. 버너불빛에 집안이 흐릿하게 보인다. 이 집은 가정집에 아이들 놀이방을 만들었던 것 같다. 벽에 아이들 구구단표와 각종 그림들이 붙어있다. 이 집에서 얼마전까지도 꿈을 키우던 단란한 가족이 살았을 것이다. 10시경 경찰서에서 사고에 대한 확인전화가 또 왔다. 본대로 다시 설명했다. 내일 아침에는 일단 오토바이부터 수리해야겠다. 라이트와 윙커가 켜지지 않으니 너무 불안하다. 사고를 직접 눈으로 보니 더 불안해진다. 내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 논현동의 가을 아침을 카메라에 담을 것이다.

 

 

10월 20일

 

   아침 6시경 폐가에서 일어났다. 버너를 켜고 간단히 요기를 한 후 동네주변을 돌아보고 어제 갔던 인천의 오토바이센터에 다시 갔다. 그러나 헛걸음이다. 부품을 가져다 놓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내가 다시 올지 확신하지 못한 모양이다. 미리 전화를 하지 않은 내 잘못이다. 실망하고 다시 돌아와 논현동의 여기저기를 돌아보았다. 이미 반수 이상의 주민이 마을을 떠났다. 논현동에 대해서는 나는 나중에 '논현동의 마지막 가을'이란 제목으로 따로 쓸 것이다.

 

   근처에 사는 초등학교 동창놈을 만나기로 하였지만 전화가 서로 연결이 안돼 만나지 못하였다.  동창놈을 기다리다보니 벌써 11시가 넘었고 이제 출발해야 한다. 소래대교를 건너 일단 안산으로 가기로 했다. 열쇠 잃어버린 키박스를 교체해야 한다. 소래에서 안산으로 가는 길은 수많은 차들로 길이 거의 주차장화 되어 버렸다. 가는 도중 또한번 사고현장을 보게 되었다. 커다란 덤프트럭이 서있고 그 앞에 여러명의 경찰들이 서있다. 다친 사람은 이미 실려갔는지 보이지 않지만 트럭앞 도로에 피가 흥건하다. 제일 하급자로 보이는 경찰 하나가 피를 덥기 위해 삽에 흙을 퍼서 날라오고 있다. 순간 교통순경이라는 직업도 할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지점을 통과하자 막혔던 길이 좀 풀렸다. 도중에 좌회전해서 안산으로 들어가는 길로 진입해 달려갔다. 도중에 한군데 오토바이센타를 들렸는데 시간이 급하다고 하니 자신은 부품이 없다며 안산역 근방의 큰 센타를 알려주어 그리고 갔다. 키박스와 앞바퀴 자물쇠를 모두 교체하는데 8만원... 공돈 들어가는 것같아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만 돈주고 배우는 경험이라 생각하지 하면서 길을 재촉한다. 앞자물쇠를 채우고 키를 잃어 버리지 않았기에 다행이다.

산~아산만의 39번국도. 월요일이라 그리 복잡하지는 않았다. 왕복4차선으로 노면상태도 양호했다.

39번국도변에서 본 들녁 정경.

    이제 부지런히 달려 내려가야 한다. 안산에서 수원가는 42번 국도로 달리다가 39번 국도로 진입하였다. 시간은 벌서 오후 3시가 넘은 것 같다. 39번 국도는 그리 복잡하지는 않았다. 시속 80km를 유지하며 달렸다. 그러나 오르막 비탈길은 실려있는 장비들 탓인지 50km 이하로 떨어지기 일수이다. 가끔 뒤에서 4륜자동차들이 오면 길을 내주었다. 제한속도는 80km지만 4륜차들의 속도는 평균 100km 정도로 보인다. 대부분 차량들이 시속 80km로 달리는 나를 여유있는 거리를 두고 안전하게 추월해 간다. 국도변을 보니 시골들의 모습이 펼쳐져 있다. 누런들과 그 위에서 탈곡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여기저기에 보인다. 날씨가 그리 좋은 날은 아니다. 아주 맑지도 않고 그렇다고 흐린 날도 아니다. 그러나 시골들판의 가을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도중에 가끔씩 쉬면서 주변을 돌아보며 엔진의 열을 식혔다. 쉬는 도중 안산 방향으로 올라가는 대배기량 바이트를 탄 두명의 라이더들을 보았다. 오늘 39번국도에서 본 유일한 바이커들이다. 도시를 벗어난 국도에서 바이커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산만 방조제 위에서 바라본 일몰전의 모습. 때마침 운좋게도 간조때였다.

    아산만 방조제에 도착한 것은 4시가 넘은서였다. 바이크를 안전한 장소에 세워두고 방조제에 올라가 쉬었다가기로 했다. 때마침 간조때라 아산만의 너른 갯벌이 보기좋게 드러나 있다. 갯벌위의 물골과 작업을 위해 꽃아놓은 나무기둥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위로 태양이 서서히 수평선으로 기울어 가고 있다. 부드럽게 부는 바닷바람속에 담긴 비릿한 갯내음이 풍겨왔다.

 

온양 근방의 이름모를 농로위에서 본 시골들녁의 저녁 노을.

    사진을 몇 컷 찍고 한숨을 돌리다가 다시 길을 떠나기 위해 바이크의 시동을 걸었다. 방조제앞 도로는 차량들이 상당히 많다. 특히 평택항에서 나오는 수많은 대형트럭들이 꼬리를 물고 나온다. 온양으로 달려가다  들판의 벼냄새들과 저녁의 분위기에 이끌려 농로로 빠져 달려나갔다. 시골들녁의 저녁노을을 느껴보고 싶었다. 상당히 거친 비포장도로였다. 탈곡후의 볏잎냄새가 은은히 풍기는 들판위에 줄지어선 전봇대위로 해가 서서히 가라앉아가고 있다.

해진후의 노을로 화장을 했던 온양시의 신비롭게 보이던 모습.

 

    8시가 되어서야 온양시에 도착한 것 같다. 그런데 표지판을 보니 온양시가 아산시로 바뀌어 있다. 어스름한 저녁의 온양시는 마지막 남아있는 희미한 노을빛으로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내게 다가 왔다. 온양시에 들어가지 않고 계획대로 송악지 부근에서 야영을 하기로 하고 39번국도를 타고 계속 달렸다. 10분넘게 달리다 보니 국도변에 슈퍼 하나가 보인다. 생각해 보니 오늘 새벽에 폐가에서 라면을 먹은 것을 제하고는 먹은 것이 하나도 없다. 온종일 바이크위에 있었는데도 전혀 배고픈 줄도 모르고 달려내려온 것이다. 슈퍼에서 계란과 우유로 허기를 달래며 주인에게 송악지가 어디냐고 묻자 때마침 물건시러 들어왔던 한 40대 아저씨가 자기가 그리로 낚시하러 그리 가는 중이니 따라오라 하며 초보운전 딱지가 붙은 승용차를 타고 먼저 출발한다. 그런데 이제 운전면허를 막 땃다고 하여 천천히 따라가면 될 것이라 했던 나의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39번국도에서 갈라진 울퉁불퉁한 2차선 지방도를 들어섰는데 그 좁고 컴컴한 길을 내가 시속 80km 이상의 속도로 아무리 달려도 그 낚시꾼 초보운전자의 승용차를 따라잡지를 못하는 것이다. 가로등도 없는 길이었고 도로작업이 있었는지 무척 노면이 어수선했다. 나중에는 너털 웃음을 웃으며 천천히 달려가니 이제서야 앞쪽에서 속도를 조금 늦춘다. 이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보다 빨리 움직이고 달리는 것부터 먼저 배우는 것이 현명한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현명한 초보운전자 덕분에 얼마걸리지 않아 나는 송악지를 타고도는 지방도를 따라 저수지 끝에 있는 한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야영지를 물색하다 길옆의 곡식건조장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너무 추워서 곧 열려진 건조장안으로 들어갔다. 담배를 건조하던 곳 같은데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 에어매트리스를 깔고 침남을 펼쳤다. 벌써 밤 10시다. 동네에서 사온 소주 한잔으로 차가와진 몸을 덮히며 하루의 여독을 풀어본다. 곧 속이 훈훈해지면서 정신이 조금 뜬 기분이 느껴진다. 건조장앞 유리창으로 비친 달빛이 무척 밝은 가을밤이다. .......

 

 

10월 21

 

    아침이 제법 추웠다. 버너에 불을 지펴 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야영장비들을 모두 꾸리고 7:00 어제 밤에 들어왔던 길을 따라 저수지를 끼고 39번 국도로 향해 달려갓다. 송악지는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저수지였다. 그러나 저수지에서 품어내는 아침안개는 제방을 넘어 내려가 근처의 마을들을 은은하게 뒤덮고 있다. 39번 국도는 매우 한적했다. 시속 60km 정도의 속도로 남쪽으로 계속 달렸다. 퇴계로에서 홍진 반모를 사서 쓰고 왔는데 얼굴이 노출되니 너무 추웠다. 옷은 오리털점퍼에 우의 상하의를 덧입어서 차가운 아침바람을 견딜 수 있었다. 손도 너무 시려서 도져히 더 이상 달릴 수가 없어서 비닐코팅 목장갑에서 퇴계로에서 샀던 라이딩전용 가죽장갑으로 바꾸어 꼈다.

 

........ 두두두두두 .............. 조용한 국도에 바이크소리만을 울리며 홀로 계속 달려나간다.

 

    안개가 고개마다 짙게 끼여있다. 평지로 나서면 괜찮아지고 다시 고개나 저수지가 근처에 있는 동네에 들어서면 짙은 안개지역이 나타나곤 한다. 차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8시가 넘으면서 한두 대 씩 보이기 시작한다. 국도변의 버스정거장엔 학교에 가려고 나온 어린 학생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다. 조용한 시골마을이 좌우로 나타났다가 뒤로 사라진다. 안개낀 고갯마루와 시냇가들이 나타났다가 신기루처럼 다시 사라진다....

 

충청도 역촌리의 39번국도변에서 만난 장례행렬.

     한참을 달려가다 9시경 역촌리에 도착했는데 한 장례행렬을 만났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83세되셨던 강복례할머님의 장례였는데, 자녀분들중에 소방대원이 있었는지 소방대원복장을 한 사람들이 여럿이 상여을 메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내가 입은 주황색 우의와 어깨에 두른 노란 X반도가 우연히도 소방대원들의 복장과 기묘하게 같은 이미지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곧 그 장례행렬과 쉽게 친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전통장례행렬을 담아두고 싶던 차였다. 나는 기묘한 복장의 일치덕에 쉽게 상주의 촬영 허락을 얻어냈다. 더구나 상가집 사람들이 호인이고 길상인지라 크게 걸릴 것도 없었다. 몇 분은 사진을 찍고 있는 나에게 소방서에서 보내서 왔냐고 묻기도 했다. 나는 바이크를 타고 장례행렬을 따라 근처의 선산까지 가서 장례가 끝날 때까지 전통장례과정을 사진으로 모두 담고 모처럼 따스한 상가집 밥까지 든든히 얻어먹었다. 할머님이 워낙에 인덕이 있으셨던 분이라 동네사람들이 많이 따라나왔다고 들었다. 그런 분이시기에 나에게도 덕을 베푸신 것 같다. 셋째날은 이렇게 갑작스런 장례행렬과의 조우로 오전이 다 흘러가 버렸다. 우연히도 그날 역촌리에는 두 개의 길상이 있던 날이었다.

 

    그런데 작은 문제가 하나 생겼다. 마을 사람들이 거의 다 떠나고 나도 인사를 나누고 떠라려고 짐을 챙기는데 오토바이 위에 올려놓았던 헬멧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전 퇴계로에서 산 반모형 홍진헬멧이었는데, 누군가 들고 가벼렸다. 동네사람에게 이리저리 물어도 우리동네에는 남의 물건 들고갈 사람 없다는데 할 말이 없다. 나도 그말을 믿는다. 문제는 헬멧이 거기왔던 누군가를 따라갔다는 것이다. 상가집에서 공연히 안좋은 이야기할 수도 없고 해서 그냥 출발했다. 벌써 정오가 넘어 한시가 다 돼 버렸다. 서둘러 달려내려갔다. 가는 길에 부여로 가는 길목의 작은 읍내에서 헬멧을 새로 구했다. 60대중반의 오토바이수리점의 사장은 헬멧을 분실했다는 소리를 듣고 원가에 판다며 이만원짜리 풀젯형 하나를 내주었다. 그런데 에휴~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충청도에서 헬멧 하나를 도둑맞으니 이제 다른 충청도 사람들까지도 다 능구렁이로 보인다. 이러면 안되는데... 반모를 보여달라고 하니 날이 춥기 때문에 이것이 나을 것이라며 극구 추천한다. 생각해 보니 그럴 것도 같아 그 헬멧을 샀는데 그 아저씨의 제안이 옳았다. 반모착용시보다 훨씬 훈훈하게 라이딩을 할 수 있었다. 도중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였다. 다른 지역과 달리 이곳 충청도의 국도에서는 정말 제한속도를 지키는 차량들이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차량들이 100km/h 이상 과속하는 넓은 국도에서도 시속 80km의 속도로 너무나도 안전하게 주행할 수 있었다. 역시 충청도다. 이 나라에서 충청도사람들은 분명히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부여로 들어가지 않고 금강하구언을 넘어 전주-남원으로 가기로 하고 가급적 쉬지 않고 달려가기로 하였다.

 

부여~군산간의 29번국도. 서해안고속도로의 개통으로 무척이나 한적한 길이 되었다.

    부여에서 군산으로 가는 29번국도는 매우 한산하였다. 서해안 고속도로 개통이후 많은 차량들이 2차선의 약간은 구불한 이 도로보다는 더 빠른 고속도로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 29번국도는 평범해 보이면서도 특유의 여유있는 시골 국도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고속도로 개통이전에는 오랜세월을 거쳐 이길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호남과 중부지방을 오갔을 것이다. 아마도 이 길은 그 위에서 있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으리라... 빽빽하지는 않지만 벚꽃나무가 간간이 보였다. 노면은 양호하였고 차량들은 이삼십분에 한 대 정도를 겨우 볼 정도로 드물었다. 주변의 논과 밭 그리고 조용한 시골 마을들... 도중에 매우 한적해 보이는 국도변의 시골 주유소에서 다시 기름을 가득채웠다. 만원이다. 다른 곳보다 1000원이 더 나왔다. 대신 주인이 생수 한병을 준다. 주인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출발을 했다. 부여에서 40-50분 달렸을까? 드디어 오후의 햇살아래 멀리 금강하구언둑이 보이기 시작했다.

 

멀리서 바라본 금강하구언.

    근처에서 잠시 쉰 후 하구언을 넘었다. 군산에 들르지 않고 지도에서 본 대로 전주로 가는 20번국도를 향해 움직였다. 진입로 주변이 공사중이라 무척 어수선 하였다. 그런데 20번국도로 들어서려는 순간 이륜차진입금지의 푯말이 보였다. 지도에는 전혀 표시가 없었는데... 난감하다. 결국 그냥 진입하기로 마음먹었다. 전주로 가는 20번국도는 알고보니 고속국도였다. 제한속도 90km/h지만 차량들은 거의 110km 이상으로 달렸다. 주변으로 넓은 호남의 평야가 펼쳐져 있고 가을 추수에 바쁜 농부들고 콤바인의 모습이 보였다. 시간도 늦었고 차량들의 흐름에 맞추기 위해 나도 100km정도까지 속도를 높였다. 바이크의 진동이 너무 커져 90km부터는 사이드미러로 뒤에 오는 차량을 식별할 수 없다. 30분정도 후에 전주에 도착해서 잠시 엔진을 식혔다. 이제 다음 목적지는 남원이다. 남원으로 가는 17번국도에는 제법 많은 차량들이 왕래하고 있었다. 시속 80km의 속도로 꾸준히 달렸다. 저녁이 다가오면서 공기가 무척 차가왔다. 제트형 헬멧의 창을 내리니 그래도 견딜만 했다. 도로 양옆으로 많은 산들과 여기저기 아름다운 계곡들도 많이 보인다. 다 들르지 못하고 시간에 쫓겨 이렇게 달려가야만 하는 것이 아쉽다.........

 

    얼마나 달렸을까. 점차 하늘이 어두워지고 남원에 도착했을 때는 캄캄해져 있었다. 오후 6시였다. 남원 시내에 들어서니 색다른 분위기의 시골도시 냄새가 풍겼다. 시내도로는 좁고 어수선했지만 무언가 따스한 여유가 풍겼다. 사람들이 차량들이 움직이는 시내도로 위를 태평스럽게 건너도 경고음을 울리는 운전자가 하나도 없다. 별안간 앞에서 역주행하는 자전거를 탄 사람이 보인다. 조급한 표정이 아니라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표정이있다.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남원은 남원 특유의 여유있는 색채가 강한 것 같다.

 

    남원에 거의 도착할 때부터 앞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오토바이센타를 찾아 앞브레크 패드를 교체한 후 시내를 돌며 잠잘 곳을 찾았다. 주유소에서 시청옆의 녹주찜질방을 추천해 준다. 시내를 몇 번 돌며 9시경 겨우 그곳을 찾아 짐을 카운터에 맡겨놓고 먼저 근처의 식당을 찾아가 국밥을 한그릇 먹었다. 반찬은 김치와 젓갈 등 몇가지만 있는데, 너무 맛있다. 밥도 더 시키고 반찬도 더 시켰다. 이곳은 호남이다. 여기서 음식값을 아끼려는 사람은 바보중의 바보일 것이다. 오늘은 오전에는 장사행렬을 따라가서 시간을 보냈고 오후는 일정을 맞추기 위해 더 많이 달려야만 했다. 찜질방은 처음 이용해 보는데, 식당, 인터넷방이 잘 갖추어져 있고 휴식을 위해 온 듯한 가족들이 많았다. 남원은 사람들의 분위기도 부드럽고 다정한 편이다. 넓은 가운데 공간에는 많은 사람들이 눕거나 앉아서 쉬고 있고 따로 작은 취침방이 있다. 샤워를 한 후 마루에 누워 지도를 보며 내일 계획을 대충 잡아놓고 11시가 넘어서 취침방으로 들어갔다. 밖이 어수선해 잠이 잘 오지 않는다.

 

 

10월 22일

 

    새벽 5시에 잠에서 깼다. 샤워를 하고 짐들을 모두 챙겨 바이크에 달아놓고 나니 6시. 아직 날은 어둡고 남원 시내에는 뿌연 안개가 짙게 깔려 있다. 10분정도 엔진 예열을 시킨 후 광한루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아담한 남원시내의 거리에는 아직 차량들은 물론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광한루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아직 개방된 시간이 아니기에 대문은 닫혀 있다. 구례로 그냥 떠날 것인가 아니면 모처럼 온 길인데 광한루는 들렸다 갈 것이지 갈등이 생긴다. 그러나 광한루를 들리려면 개방되는 8시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순간 대문옆에 세워진 바이크가 한 대 보이기에 나도 그옆에 바이크를 세우고 대문으로 다가갔다. 문을 살짝 밀어보니 스르르 문이 열린다. 안을 살짝 보니 새벽안개 가득한 광한루 마당에서 미화원아저씨 한 분이 낙엽을 치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사정을 이야기하고 광한루를 잠시 돌아볼 수 있었다.

 

          

    안개에 젖은 광한루... 예전에 왔을 때와는 너무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사람이 화장으로 때로 다른 분위기로 변하듯 옛 누각들 또한 가을의 짙은 안개속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5분 정도만 돌아보고 나가려 했지만 안개에 젖은 옛 이야기의 유혹이 너무 강해 30분이 넘도록 시간가는 줄 모르고 광한루의 작은 마당을 걷고 또 걸었다...........

 

    고맙다는 인사후 출발 준비를 하는데 작은 돌발사고가 발생했다. 광한루입구 안쪽에 두었던 헬멧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난감하다. 어제 충청도에선 홍진헬멧이 동네사람을 따라가더니 오늘은 어제 산 한미헬멧이 남원에서 이도령 후손을 따라갔다. 아무리 주변을 뒤져보아도 헬멧이 보이지 않는다. 광한루가 개방되기전이고 누구 들고갈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어제 장사집에 따라가서 한나절을 보냈기에 오늘은 먼길을 달려야 한다. 헬멧없이 이 짙은 안개속을 달려갈 수는 없다. 다행히 막 출근한 광한루 관리사업소의 유승영씨를 만나 도움을 청했다. 친절하게 여기저기 전화를 해, 새벽에 다녀갔을 만한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고 나서 30분이 지난 후 헬멧을 겨우 찾을 수 있었다(구체적 내용은 비밀로..). 겨우 안도했지만 이틀 연속 헬멧분실 사고를 당하니 황당했다. 그래도 인심좋고 순박한 지방도시이기에 헬멧이 돌아왔다.

  

    아침안개속의 곡성부근의 가을들녁, 작은 농로

짙은 안개속에 끝이 없을 듯 보이던 곡성 진입도로. 19번국도에서 분기되던 지점이다.

   시간이 좀 지체되었지만 8:30, 곡성, 구례로 가는 17번국도로 들어섰다. 곡성까지는 17km, 구례까지는 28km를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섬진강의 영향인지 짙은 안개가 가득차 있어서 50m만 넘어도 앞이 잘 보이질 않는다. 시속 40km 정도로 이동하면서 가끔 길옆에 바이크를 세워두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길옆에서 콩이나 깨를 거두시는 시골 노인들이 모습이 간간이 눈에 띠었다. 안개속의 시골국도는 이제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고 있다. 안개속의 마을들과 들녁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왔다가 천천히 안개속으로 사라진다. 곡성 진입로 부근은 흔치않은 가로수들이 늘어서 있는데 안개속에 끝이 보이지 않는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에 나를 불러들이는 것 같았다. 구례에 다다를 무렵 안개파티는 드디어 끝이 났다. 밝은 가을의 햇살이 가끔씩 머리위를 비춘다.

  

구례에서 하동가는 길에 만난 여학생들

도인같은 풍모의

구례의 치과의사

    안개파티에 시간가는줄 모르다가 12나 되서야 구례읍에 도착하였다. 점심은 이곳에서 해결해야겠다. 이제보니 아침식사도 잊고 달려왔다. 시내를 천천히 바이크를 타고 돌아본다. 평일의 시골읍 구례는 거리에 사람들도 별로 보이지 않고 마치 시간이 정지되어 있는 것 같다. 한낮의 날씨가 무척 따스하다. 남쪽은 남쪽인가보다. 12시가 넘으면서부터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비가 오려는 것 같기도 하고.... 시내의 한 식당에서 김치찌게를 시켰다. 반찬이 열까지나 나온다. 4000원짜리 식사에 재료비나 나오려나...? 이곳은 그만치 야채가 풍부해서 값이 싸다는 이야기인데 서울의 시장은 일년내내 야채값이 저렴했던 것을 본 기억이 없다. 대신 누군가는 일년내내 부자가 되고 있겠지. 내 경험으로 봐서 이제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식당의 반찬수는 더 늘어갈 것이다. 구례에서 치아치료차 '고치과'라는 치과병원에 들렀다. 그런데 그 병원의 의사선생의 외모가 범상치가 않다. 광주가 고향이신데 이곳의 물들지 않은 자연과 사람들이 좋아 욕심 버리고 구례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왜 콧수염을 기르냐는 질문에 너무 완고하셨던 아버님에 대한 반항때문이라는 다소 의외의 인간적인 대답을 들었다. 이 시골의사는 현대문명에 별다른 관심이 없어서인지 인터넷조차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문명의 이기를 그다지 원치않는다고 했다. 표정과 말투속에 속세의 의사들과는 전혀 다른 인간미와 여유있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인간적 매력이 느껴지는 상당히 개성있는 의사였다.

 

구례~하동간의 19번국도. 섬진강을 따라 이어진 벚꽃나무들이 우거진 깨끗하고 아름다운 2차선 도로이다.

    구례에서 섬진강을 따라 하동까지 이어지는 19번국도는 벚꽃나무로 우거진 깨끗하고 아름다운 길이다. 다른 특별한 개성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봄날에 많은 관광객들의 차량이 몰려 들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명성으로 듣던 섬진강의 이야기는 이제 옛날의 일이 되고 말았다. 내눈에는 이제 평범한 보통의 강의 모습으로밖에 보이질 않는다. 일부지역의 강가 아래에 만들어 놓은 자전차전용도로는 강을 완전히 파괴하다시피 해 놓았다. 도대체 누구의 발상이었을까? 섬진강의 시인들이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시속 40-50km의 속도로 차량들도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 깨끗한 시골국도를 달려가면서 어깨위로 따사로운 햇살까지 받으니 바이크위에서 핸들을 잡은채 졸음이 올 정도다. 길옆 농가의 감나무들에는 잘익은 감들이 주렁주렁 열려있다. 화개장터를 지나 1시50분에 평사리에 도착했다. 강가에 대형주차장이 있어 거기에 바이크를 세우고 우유와 생수를 사서 마셨다. 대형주차장을 가진 휴게소가 평사리의 상당부분을 잠식했다. 유명했던 평사리의 본래 모습은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하동으로 출발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바람이 엄청나게 강해졌다. 다행이 뒷바람이라 아직 별 문제는 없다.  

 

섬진강 하구에서 하동을 바라보며

  2:20 드디어 하동읍에 도착했다. 구례읍에 비해 도시자체가 아주 큰 것은 아닌데도 인구도 많고 훨씬 복잡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구례와는 너무 대조적으로 느껴졌다. 읍내로 들어가는 길에 60대정도 보이는 아저씨가 짐자전거뒤에 무언가를 실은채로 고개를 올라오는 모습 웬지 불안해 보이는데 급기야는 벌러덩 자빠지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오늘이 장날인가? 바이크를 세우고 쓰러진 자전거를 세워놓고 아저씨를 부축해 길옆에 앉혀 드렸다. 술이 잔뜩 취했다. 웃음이 나온다. 예전에 고향의 장날에 흔히 보던 모습이다. 읍내를 잠간 돌아본 후 다시 출발한다. 이제 다음 목적지는 순천이다. 섬진교를 건너는데 다리 아래에서는 한창 공사가 진행중이다. 또 하나의 파괴가 자행되는 중이다. 근처 강가에는 재첩잡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가는 길에 하동에서 가까운 망덕포구쪽으로 방향을 돌려 근처의 바다를 잠시 돌아보았다. ..... 이곳의 바다는 너무 죽어있다. 섬진강과 주변 바다... 내가 원했던 섬진강여행은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바라볼 수밖에 없다.

 

   망덕포구에서 좁은 지방도를 따라 가다가 동광양을 들러 보기로 하고 길을 돌렸다. 동광양에 가는 도중 걸어서 집에 돌아가는 관절이 좋지 않은 할머니를 만나 도로에서 3km정도 떨어진 마을에 태워다 드렸다. 다리아픈 할머니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바이크에 잔뜩 매달린 짐들 때문에 자리가 너무 좁아 나는 연료통위에 앉아 서커스운전을 해야했다. 동광양은 하동에서 순천으로 가는 도중에 있다. 적지않은 규모의 산업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건물들의 규모며 넓은 도로들, 서울주변의 산업도시에 온 기분이다. 가볍게 돌아본 후 2번국도를 통해 4시 5분 광양에 도착하였다. 가는 길은 4차선의 고속국도였는데 차량들이 무척 빨랐다. 맞바람은 무척 세게 몰아쳐서 아무리 스로틀을 올려도 80km/h를 넘을 수 없었고 순간적으로 변하는 바람에 125cc 바이크가 수시로 흔들린다. 고개를 하나를 넘어 내려가는데 가속력을 받은 거대한 덤프트럭이 굉장한 속도로 80km 정도 속도로 달리는 내 바로 옆을 건드릴 듯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바로후 엄청난 뒷바람과 함께 나와 바이크가 떠올라서 1m이상 옆으로 이동한후 땅에 바퀴가 닿았다. 다행이 겨우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소름끼칠 정도로 위험한 순간이었다. 각종 장비(바이크150+장비80리터,30+내체중85=약270kg)로 바이크가 무거웠기에 망정이지 아마 시티100이나 소형스쿠터였다면 틀림없이 휩쓸려 날아갔을 것이다. 오랜 주행으로 잠시 방심했다. 사이드미러를 수시로 확인하고 대형차가 다가 올 때는 조심해야하겠다....... 순천까지 14km남았다는 표지판이 보인다. 시속 80km정도의 속도로 곧 순천시에 도착하였다. 시내로 진입하자 그동안의 여유있던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잠시만 지체해도 뒤에서 커다란 버스가 경적을 울리며 밀어붙일 기세다. 인정사정없다. 가는 도중에 길가에서 운전자들에게 간식거리를 파는 부부를 만나 대대동 가는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어느지역이든 길을 물어보면 힘들게 부지런히 사는 사람들이 더 친철하게 알려주는 것 같다. 그 부부가 알려준대로 큰 도로를 따라가다가 좌회전으로 빠지고 갈라지는 작은 소로로 달렸갔다.     

 

순천만의 갈대밭에서 바라본 일몰정경.

    순천 대대동은 순천읍내에서 5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넓은 국도에서 울퉁불퉁한 작은 소로로 들어서 20분정도를 달려야만 도달할 수 있었다. 비포장도로를 몇백미터 달려들어가니 황금색의 너른 들판이 보였다. 바로 내가 찾고 싶어하던 순천만의 갈대밭이다. 낮은 제방을 따라 사람들 발길에 의해 만들어진 길들이 있고 갈대숲의 여기저기에는 사진찍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미 해는 많이 기울어가고 있다. 시간이 얼마 없다. 부지런히 옷을 갈아입고 카메라를 메고 숲으로 걸어들어갔다. 이곳의 갯벌은 상당히 깨끗하고 기름지다. 그러나 더 안쪽으로 갈수록 펄의 깊이가 상당하다. 100mm 정도 안쪽으로가니 펄이 허벅지까지 빠지기 시작한다. 나중에 다시 올 때는 이곳을 움직여 다닐 수 있는 널빤지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상가상으로 밀물까지 들어오기 시작한다.결국 많은 곳을 돌아보지는 못하고 근처를 끙끙거리며 질척대다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 먼곳까지 왔는데 시간이나 물 때 여러 가지로 내게 불리해 보인다. 순간 고민이 든다. 벌교로 떠날 것이냐 아니면 아침에 이곳을 다시 찾을 것이냐.. 나는 내일 아침 한번의 기회를 다시 보기로 하였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펄흙이 여기저기 붙은 바지를 갈아입고 순천시내로 다시 돌아와서 찜질방을 찾았다. 역시 주유소에서 물으니 단번에 찜질방의 위치를 알려준다. 짐을 카운터에 맡긴후 9시경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한후 돌아왔다. 이곳은 호남이면서도 대도시라 그런지 사람들, 음식맛이나 반찬차림이 마치 서울의 어느 변두리에서 식사하는 기분이 난다. 같은 호남이지만 남원이나 구례와는 너무나도 다른 곳이다. 오늘은 아침 6시부터 저녁 9시까지 온종일 바이크위에 앉아있었다. 몸이 힘든 것은 아닌데 너무 긴장했던 탓인지 찜질방에 눕자 피로가 와르르 몰려온다. 작은 규모의 찜질방에는 남자들만 서너명 보인다. 나무로 된 바닥에서 나는 나무의 냄새의 편안한 느낌속에 잠에 빠져 들었다.....

 

  

10월 23일

 

물에 잠기는 순천만의 갈대밭

     오늘은 아침에 좀 게으름을 부리다보니 평소보다 30분넘게 늦었다. 7시나 되서야 순천만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7시반경 도착했는데 너무 늦었다. 이미 해가 솟아올라 버렸다. 아침여명속의 갈대밭을 찍으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하지만 그냥 갈 수는 없다. 저녁에 봐둔 몇군데 포인트를 담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기로 하였다. 넒은 갈대밭을 걸어서 움직이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순간 과감한 생각이 떠올랐다. 제방위로 바이크를 몰고 올라가는거다. 올라갈 길이 마땅치 않았지만 한군데 장소를 찾아 과감히 오르는데 성공했다. 폭 1m도 안되는 제방위 풀길을 따라 달려나간다. 200m정도를 달렸을까 나는 다시 제방길 아래로 달려내려왔다. 군데군데 핀 예쁜 코스모스꽃들이 망가질 것만 같았다. 제방 아래길로 달리다 좋은 장소가 보이면 바이크를 세워두고 내려서 갈대밭을 돌아보는 방법으로 부지런히 움직였다. 갈대밭을 돌아다니다 보니 벌써 10시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저 깊은 뻘 가운데로 가야할 것 같은데, 지금은 그럴 계절도, 물때도 아니다.  

 

 

벌교역앞의 노변시장. 근처에서 잡은 꼬막, 쭈꾸미, 게가 많다.

   이제 남해안을 따라 나있는 시골길들을 돌아보며 마음내키는대로 가보는 거다. 여기저기 끊어진 비포장 바닷가길을 한동안 달린 후 작은 농로에 접어 들었다. 농로를 빠져나오니 남해안을 따라 달리는 2번국도로 들어선다. 2번국도로 서쪽을 향해 시속 50km 정도로 30분정도 달리다보니 곧 자그마한 읍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벌교다. 기차역 주변 길가에는 꼬막이나 낙지등 해산물들을 파는 상인들의 모습이 마치 시골장터를 연상시켰다. 읍내는 마치 서울부근 도시들의 70년대 모습을 연상시켰는데 풍족해 보이지는 않지만 오히려 무언가 정감과 향수 그리고 마음의 여유가 느껴졌다. 거리계를 보니 이제 오일을 교환해야 할 때다. 서울서부터의 주행거리가 700km 정도 된 것 같다. 보통 500km마다 교환했지만 동네 센터에서 만원짜리 고급 윤활류를 넣은 탓인지 보통 500km 주행후부터 나타나는 타는 냄새는 나지 않았다. 벌교에도 오토바이센터는 2군데가 있었다. 교환을 맡기고 근처 식당에서 해장국을 먹었다. 이곳의 음식도 무척이나 맛있었다. 식사를 하고 나오니 동네 50대 아저씨 두분이 내 바이크를 구경하다가 나를 보고 이것저것 묻는다. 바이크에 달린 자동차표지판에 있는 '서울'이라는 글자를 보고 아주 좋은 대배기량 바이크로 착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센터사장은 다 안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이 10년이 다된 중고 125cc 바이크는 이곳까지 아무 고장없이 나를 태우고 달려왔고 또 서울로 돌아갈 것이다.

 

     

    좌로부터 득량만방조제, 전어잡이 나가는 어민들, 선소부근의 갯벌. 넓고 기름지다.

우리 나라의 다른 갯벌들에 비해 오염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2번국도를 달리다 좌측으로 빠지는 작은 지방도로 예당을 지나 득량만방조제를 지나니 매우 한산한 남도의 해안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부터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기분좋은 라이딩이 시작되는 것이다. 시간은 12:30이다. 무척이나 깨끗하고 오염되지 않은 해안이다. 2차선의 해안길에는 차도 사람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빛나는 태양빛 아래 반짝이는 바닷물과 작은 마을들만이 고요속에 놓여져 있을 뿐이다. 마을로 들어서자 동네앞에서 일을 준비하는 주민들이 몇분 보인다. 마을앞길은 건조시키기 위해 널어논 벼들로 온통 누렇다. 충청도에서부터 익숙해진 정경이다. 이곳은 농업과 어업을 겸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보인다. 앞은 깨끗한 바다요, 뒤는 기름진 논밭이 널려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주민들의 얼굴에 패여있는 깊은 주름에서 이곳의 생활이 풍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도 차도 보이지 않는 한적한 남도의 해안도로

    해안도를 달리다 선소 마을에 잠시 들렀다. 이십호정도되는 작은 마을앞에 마을크기만한 커다란 콘크리트주차장은 여름철엔 이곳에도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오늘은 마을 방파제 앞에 낚시꾼들의 차량 2대만이 있다. 가서 조과를 보니 숭어새끼, 살오른 망둥어 몇마리만이 보인다. 다시 달린다. 길가에 공룡알화석 유적지라는 표지가 보인다. ... 이 호남 남해안가의 2차선지방도는 지나다니는 사람도 차량도 거의 없다. 얼굴에 부딛히는 공기는 기분좋게 따스하다. 도로변의 밭들도 야채와 풀들로 여전히 푸르다. 넓은 들처럼 드러났던 갯벌에 물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 바닷물은 반사되는 태양빛에 눈이 부시고 오염되지 않은 이곳 남해안 특유의 상큼한 공기냄새가 불어오는 바람에 가득하다.

 

    시속 40km 정도로 사람하나 보이지 않는 해안길을 돌고 또 돌았다. 홀로 달리는 이 바닷가길이 조금도 고독하지 않다. 따스한 남해안의 햇살, 부드러운 바람, 멀리 태양빛에 반사되는 바닷물, 마치 꿈결속에 달리는 것 같다. 바다 맞은편으로 고흥반도가 닿을 듯이 보인다. 이 길은 오래전부터 내가 가보고 싶었던 길이다. 2차선의 포장도로는 해안을 따라 깔끔하게 펼쳐져 있고 해안가의 배산임수의 좋은 평지에는 어김없이 오래된 마을들이 자리잡고 있다. 가는 곳마다 기름진 크고작은 펄들이 널려있다. 동네앞마다 갯벌에는 동네 주민들 몇몇이 굴을 따고 있다. 선소를 넘어 몇구비 해안을 돌자 갯바위들이 널린 해안에서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보였다(금릉 근처였다.). 바이크를 세워놓고 갯장화를 바꾸어신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서로 경쟁을 하듯 분주한 손놀림으로 굴을 따고 게를 건져 올린다. 연세도 대부분 60이 넘으신 분들이 많다. 가냘픈 몸매, 펄흙이 여기저기 뭍은 몸빼바지... 연약해 보이는 손으로 부지런히 바구니를 채워넣는다. 이 남도의 바닷가에서 거친 바닷바람과 부딛치며 이곳 고향을 지키고 있는 손이다. 말을 건네자 응답하는 남도 특유의 약간은 억센 듯한 말투, 그러나 곧 다정하게 굴을 열어서 내게 건네 주었다. 밀물이 계속 들어오면서 할머니들의 손길은 더욱 바빠졌다. 그리고 곧 해안가는 반짝이는 은물결로 뒤덮혔다.....

 

   달리다보니 몇 개의 해수욕장도 보였다. 약간의 모래백사장이 있고 대부분은 펄로 이루어져 있다. 인구밀도가 높지 않고 도시에서 먼 지역이다보니 대체적으로 덜 개발되어 있었고 따라서 오염되지 않은 모습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어곳의 해안선 자체가 아주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척 평범한 편이다. 율포해수욕장은 이 근처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해수욕장 같다. 해수욕장 앞은 무척 넓은 갯벌이 펼쳐져 있다. 넒은 펄 멀리 조개를 잡는 사람들이 작은 점처럼 드문드문 보인다. 4시경 율포를 지나니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77번국도로 길이 이어진다. 해가 많이 기울고 갯벌일을 끝낸 아주머니들이 잡은 해산물들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달리다보니 다시 해수욕장 하나가 보인다. 수문포해수욕장이다. 77번국도에서 해안을 따라 다시 작은 소로를 달리다가 보건소를 다녀온다는 한 할머니를 만났다. "아퍼.. 아퍼..." 처음 본 나에게 무조건 아프다는 말만을 반복한다. 할머니는 이번 여행에서 만난 두 번째 동승자가 되었다(나는 이번 여행에서 4명의 동승자를 태웠다). 장재도 부근의 동네에 내려드린 후 잠시 고민에 빠졌다. 남해안을 따라 계속 돌아갈 것이가? 아니면 장흥, 나주를 통해 서해안으로 갈 것인가? 나는 시간상 후자를 택하기로 하였다. 해남, 진도쪽은 여러번 가본적도 있거니와 그곳까지 돌아보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바닷가의 작은 마을을 나와 장흥으로 가는 77번 국도로 가기위해 작은 농로를 따라 지도와 나침반을 보고 달렸다.

 

    해안에서 내륙으로 가는 농로를 5분정도 달리자, 저녁햇살속에 농로변에 우거진 갈대들이 눈부시게 빛난다. 가는도중 한 이름모를 마을(나중에 지도를 보니 목단 부근이다.)의 모습이 저녁빛의 역광에 멀리서 신비로운 자태로 다가온다. 바이크를 돌려 무작정 그곳으로 달려갔다. 겨우 차가 지나갈 정도의 작은 농로가 냇사를 따라 이어져 있다. 마을까지 달려들어가 여기저기를 서성였다. 멀리서 보았던 모습과 가까이서 본 모습은 또 다르다. 냇가에는 맑은 물이 천천히 흐르고 갈대들이 무성하다. 저녁 무렵의 공기가 서늘하게 피부에 느껴진다. 소름이 돋는다. 빨리 떠나자.... 장흥입구까지 왔지만 장흥읍내는 들어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나주로 가는 길에 장흥외곽의 한 교회터 부근에서 또다시 눈을 빼았겨 비포장 풀길을 따라 바이크를 몰고 들어가 한동안을 다시 헤멨다. 주변에 온통 논과 밭이 있는 교회앞 작은 개울에는 맑은 물이 소리를 내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나주로 가는 23번 국도로 나가 계속 달려간다. 날이 이제 저물려고 한다.

 

    나주로 향해 달리는 길에 한 고갯마루를 내려가면서 이상한 지역을 보게 되었다. 산의 중턱에 일정한 선들을 그어놓고 그 아래의 나무들은 모두 벌목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 아래쪽의 마을들은 모두 철거되어 있었다. 순간 이곳이 수몰예정지역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날은 많이 어두워졌다. 어디까지 갈 것인지 판단해야한다. 나주까지 밤에 갈 것인지 도중에 어디서 머물 것인지... 계속 바이크를 달려나가는데  순간 마을 하나도 보이지않던 수몰예정지의 한구석에 유일한 민가가 보였다. 바이크를 그리고 몰고 갔다. 민가에는 아직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이 보였고 집밖 바로 옆에는 예전에 가게로 썼던 듯한 아주 작은 콘크리트건물이 있었다. 그안에는 예전 살던 사람들이 버리고간 살림도구며 헌이불 책등 쓰레기들이 널려 있었다. 결정되었다. 오늘밤은 몇 년후면 물밖에도 드러나지 않은 채 물고기들의 안식처가 될 이곳에서 쉬어갈 것이다. ............

 

    10시경 잠이 들었다가 12시경 옆의 민가의 주인들이 차를타고 돌아오는 소리에 깼다. 아침에 사진을 몇컷 찍기 위해 여기에서 머물겠다고 말하자 무척 거부하는 표정을 짓다가 마지못해 허용했다. 짐작컨데 이곳에서 살던 주민은 아니고 공사 때문에 임시로 빈 민가를 사용하고 있는 댐건설관련 직원인 것 같다. 밤이 무척 추웠다. 잠이 깨어 밖에 나가보니 정말 적막 그 자체다. 이미 차량들도 끊어지고 어떤 인공적인 소리도 불빛도 젼혀 없다. 마치 무인도나 사막 한가운데서 혼자 있는 기분이다. 어스름한 새벽 달빛에 수몰지를 둘러싼 산들이 사방에 검은 병풍처럼 깊고 높게 펼쳐져 있고 나는 그 한가운데에 홀로 서 있다.

 

--- 이하는 바쁜 일상으로 공백으로 남겨두기로 함. ---

 

10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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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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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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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 10. 26. 오후 8시 남산터널을 지나 장충동공원, 동대문을 거쳐 혜화동로타리를 돌아 무사히 집에 도착함. 총1448km 주행.

 

    내가 원하던 길의 모습을 찾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찾는 길의 존재 유무의 문제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의 것이었다. 나는 내 자신의 눈으로 자신만의 잣대를 들이대며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의 삶, 희노애락이 스며있는 수많은 길들을 지나쳤고 그 길들속에 숨겨진 다른 얼굴들을 보지 못했다. 아무렇지 않게 그냥 지나쳤던 그 길들은 계절과 날씨, 시간에 따라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고 그 곳을 생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뿐만 아니라 그 위에서 있었던 수많은 사연들까지도 다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생의 마지막까지도 그 길을 따라 떠나갔다. 너무 쉽게 지나쳐 사라져가는 이방인에게 그 길들은 자신의 모습을 쉽게 열어보이지 않았다. 이제 돌아와 가끔 나는 그렇게 쉽게 지나쳤던 수많은 길들을 돌이켜 본다. 그리고 내가 어린시절부터 보아왔던 고향의 길들과 이제 나의 집에 들어가기 위해 무심코 지나다니는 혜화동의 작은 골목길들, 그리고 그 위에 있는 삶의 자취들을 되새겨 보면서, 가까이 다가갔음에도 깨닫지 못한채 스쳐지나갔던 그 수많은 길들의 얼굴들을 다시 들여다 본다.    

 

---- 남서해안 모터사이클 여행기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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