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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3차투어 : 화천 파로호 모터사이클 여행기


  

   길은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인생 그 자체, 역사, 도리, 희망, 때론 절망과 고통....  길에 얽힌 추억 몇 개는 누구라도 다 가지고 있다. 길은 우리의 일상과 항상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길은 많은 영화의 주 장면이 되기도 했다. 영화 '서편제'에서의 소리꾼들의 한에 넘치는 한국의 시골길, 영화 '길(La Strada)'에서의 떠돌이 광대들의 구원과 절망을 나타내던 가로수길... 내가 어린 시절 기억하던 길중 하나는 학교가던 길에 가을이면 아침마다 볼 수 있었던 안개에 싸인 미루나무길이다. 그리고 어머니를 따라 처음 서울가는 길에 차창을 통해 바라보던 처음 보던 풍경들, 서울로 가는 그길은 왜 그리도 멀고 낯설게만 느껴졌는지... 어쩌면 난 이번 여행에서 그러한 느낌들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10월 10일

 

    토요일 하루를 시간을 얻었다. 금요일 오후 필요한 물건들을 새들백에 챙겨 넣은 후 혜화동로타리를 돌아 의정부방향의 시내도로로 계속 달렸다. 미아삼거리를 지나면서 도로상황이 어느정도 좋아졌다. 대학로에서 출발한 시간이 오후 2:40 의정부에 도착하니 3시 30분이다. 의정부를 바로 나와 포천으로 가는 43번국도변의 한 주유소에서 기름을 채우고 주행거리를 알려주는 계기를 '영(0)'으로 맞춰두었다. 3/4정도 넣는데 7000원. 이제 300km는 갈 수 있다. 43번도로 역시 모든 도로가 그렇듯 과속차량들로 붐볐다. 2차선의 제한속도 60km는 아무 의미가 없다. 어디부터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4차선으로 길이 넓어졌고 제한속도 80km의 표시가 보였다. 차량들은 더욱 빨라졌다.

 

   바이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보였지만 의정부를 지난지 30분후부터인가 무언가 이상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천천히 달리며 여기저기를 살펴봐도 이상이 없는데... 그런데 가만히 보니 앞바퀴가 회전하는 모양이 고르지 않고 흔들거린다. 잠시 세우고 오토바이를 살펴봤는데 큰 이상은 안보이는데 투어전에 갈아논 새앞바퀴가 휠 여기저기에서 조금씩 팅겨 나온 것이 보였다. 천천히 운전해 가까운 오토바이센터를 찾았다. 다행히 포천 가기전의 송호리에 있는 유성오토바이센터를 찾았다. 그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오토바이는 점점 요동이 심해져서 급기야는 말을 타듯이 흔들거렸다. 그때 떠오르는 생각, '이보다 더 말같을 수는 없다. 할리 데이비슨을 타더라도 이렇게 말같은 기분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원인은 타이어의 접착불량으로 밝혀졌다. 동네 센터에서 타이어교환을 엉망으로 한 것이 문제였다. 타이어공기를 빼니 접착이 제대로 되지 않은 부문이 여기저기서 드러났다. 40대 초반정도로 보이는 사장이 능숙하게 접착제를 다시 바르고 바람을 채워놓는다. 어떻게 서울의 오토바이센터가 이곳 시골의 오토바이센터만도 못한지... 센터사장은 됐다며 그냥 가라고 하는데, 미안해서 기름넣고 남은 돈을 억지로 주고 나왔다. 이곳 시골인심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4:30 다시 출발하여 좀 더 여유있게 국도변을 감상하며 여행을 계속하였다. 87번국도, 56번지방도가 갈라지는 포천근처의 교차로를 지나자 길이 좀더 여유가 있어보였다. 좀 더 위로 갈수록 차량들이 줄어든다. 훨씬 여유있게 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가는 도중도중 내려서 주변도 돌아보며 목적지 도착시간에 신경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시골이라고는 하지만 마을주변의 국도변은 이미 개발의 바람을 맞본 것 같다. 부동산업소도 많이 보이고. 차량들도 많이 줄어 조용해진 도로를 시속 40~80km의 속도로 달렸다. 주변을 돌아보며 갈 때는 40~50km의 속도가 좋은 것 같다.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탓도 있지만 시속 70km가 넘어가면 주변을 감상하는 것이 한계가 있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감당할 수 있는 각이 좁아진다. 주변 구경을 할 수는 있지만 무척 불안하다. 무조건 빨리 달려야만 한다면 여행의 의미가 아무것도 없다. 위로 올라갈수록 좀 더 전형적인 시골의 모습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어둑어둑 해질무렵 신철원에 도착하였다. 작고 아담한 도시이다. 시내외곽부근에 작은 이모님이 사시는데 찾아가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오늘은 그냥 지나가기로 했다. 시내를 한바퀴 돌고 다시 북쪽으로 달려나갔다. 날도 더 어두워지고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더 차가운 바람이 느껴진다. 오늘 화천에 도착해야 하는데 여기저기 구경하다 너무 늦은게 아닌가 싶어 좀더 속도를 올렸다. 도로의 제한속도인 시속 80km. 폭주족들이 볼 때야 너무 느리고 답답하겠지만 나에게는 이 속도도 느린 속도는 아니다. 내가 타고 있는 이 낡은 오토아이는 시속 60km정도까지의 저속에서 안정성을 보이는 것 같다. 시속 70km 후반부터는 약간 뜨는듯한 느낌이 느껴지기 시작해서 그 느낌이 시속 105km까지 이어진다. 그 이상의 속도는 시도해보지 않았다. 엔진 진동도 7000rpm부터 진동이 두드러지게 심해진다. 하지만 연비는 아주 좋다. 보통 연료통을 가득 채우는데 9000원이 들었다. 휘발유 7리터가 약간 넘는 양이다. 연료게이지의 붉은 경계선까지 연료를 소비하는데 300km 이상을 달린다. 연비가 1리터당 40km이상이다. 내가 바이크를 아주 정속으로 운전하기 때문인 것 같다.

 

   휴전선이 가까워지면서 국도는 더욱 한산해졌다. 신철원에서 북쪽 43국도로 약 5km지난 지점의 교차로에서 463번지방도로로 길을 바꾸었다. 화천에 좀더 빨리 가고자하는 의도였다. 나침반을 보고 방향을 보니 그것일 빠를 것 같았다. 그러나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그것은 좋지 않은 작은 지방도로로 더 멀리 돌아가는 길이 된다. 순간적인 착오다. 이제 주위는 온통 어둡고 마을도 거의 없고 차들도 한 대도 보이지 않는다. 밤이었지만 바로 옆에 작은 냇가가 있는 것이 보였다. 어스름한 달빛에 젖은 계곡이 무척 아름다워 보였다. 낮에 이곳을 지났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생각해 본다. 차한대 보이지 않는 한적한 산길을 시속 40km 정도를 유지하며 달려 7시경 철원군 서면 신술동에 도착하였다. 이제 숨도 돌리고 저녁도 해결해야 한다. 군인 몇 명이 작은 동네식당에 들어가는 것이 보여 그곳에서 해장국을 먹었다. 식사후 식당주인에게 화천가는 길을 물으니 남쪽길로 내려가다 백운계곡을 넘어가면 빠르다고 이야기해준다. 나는 남쪽길로 내려가다 도중에 길을 바꾸어 다시 북쪽길로 가기로 결정했다. 지도를 보니 김화위쪽의 5번국도가 화천으로 통하고 있었고 그길을 따라 가고 싶었다. 시간이 갈수록 밤공기가 더욱 차가와지기에 다시 신술동으로 돌아와 길옆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새들백에서 우의 상하의를 꺼내 덧입었다.

 

   신술동에서 56번지방도로를 통해 김화방면으로 가는 길에 만난 신술터널이다. 다니는 차량들도 없어서인지 터널등도 군데군데 켜져있어서 어두웠다. 그러나 이 터널을 달려갈 때의 느낌은 무언가 새로운 심연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터널을 빠져 나오자 도로위에 둥근 달이 떠올라 있는 것이 보인다. 오고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혼자 고요속에 달려가자니 한밤의 방랑자가 된 기분이다. 터널을 통과해 56번지방도로 20분 정도를 북쪽으로 더 달려가자 김화읍에 거의 다 가서 조금 어수선한 교차로가 나왔다. 김화, 화천, 근남면, 사곡이라 표시된 도로읽기가 좀 어려운 도로표지판이 보였다. 몇 번 왔다갔다하다가 화천방향의 길을 찾아 고개로 올라가니 도중도중 비포장 도로가 나온다. 고개를 하나 넘어 달려나가다보니 바이크의 라이트불빛에 검문소앞에 군인들 몇 명이 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선임자인 듯한 병사하나가, "이곳은 민통선이라 밤에는 통행금지인데요."라고 말한다. 할 수 없이 다시 되돌아 나가서 근남면에서 화천으로 가는 56번국도로 가야했다. 56번국도로 달려가다 보니 가파른 고개가 나왔다. 구불구불 전형적인 강원도의 고개길이다. 가다보니 수피령의 푯말이 보였다. 오가는 사람이나 차량이 하나도 없고 고독한 라이딩이 계속되었다. 컴컴한 밤에 가파른 고개길을 달리자니 문득 두려운 생각도 든다. 전설속의 도깨비가 나올 것도 같다. 고개를 오르는 길에서는 3단과 2단변속을 주로 해야 했다. 원하는만큼 속도를 낼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급커브길에 슬립해서 떨어져 다치기라도 한다면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 바이크의 고장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내 바이크에는 3일분의 식량과 텐트, 에어매트, 침낭2개, 버너, 코펠등 모든 야영장비가 다 실려있다. 아무리 외떨어진 산속이라도 조난당하는 일은 당하지 않을 것이다. 넘어서 달려 내려가다보니 다목리가 나왔다. 너무 추워 몸이 많이 얼었다. 잠시 바이크를 세우고 다목리의 피시방에 들어가 인터넷에서 지도를 다시 찾아보면서 몸을 녹였다.

 

   다목리에서 461번지방도로 갈라져 나와 화천으로 계속 길을 향했다. 아무도 없는 밤길이다. 달빛에 젖은 주변을 보니 굉장히 개끗하고 아름다운 곳 같다. 한 밤에 이곳을 지나는 것이 아쉽다. 언젠가는 다시 오리라... 봉오천을 따라 나있는 지방도를 따라 가다보니 갑자기 넓고 잘 단장된 큰 길이 나왔다. 나는 그길로 들어섰다. 새로 아스팔트를 깐지 얼마안된 넓은 길이었다. 달리다보니 5번국도의 표시가 보인다. 속도를 더 높였다. 얼마 달리지 않아 작은 도시의 불빛들이 보였고 곧 나는 넓은 길가의 한 검문소에 도착했다. 헌병들이 근무를 서고 있었는데 화천이 어디냐고 물으니 바로 그곳이 화천이란다. 파로호가는 길을 강변길을 따라 다음 검문소까지 간후 다리(나중에 보니 이름이 대붕교다.)를 건너 비탈길을 올라가니 달빛 아래 넓은 호수가 보였다. 시간은 밤 12가 다 되어서였다. 파로호를 끼고 계속 달려가 용호리라는 마을에 도착해서 경로당 마루에 텐트를 쳤다. 침낭속에 누우니 오랜 시간의 라이딩후라 그런지 긴장이 풀리지 않아 잠이 곧장 오지 않는다. 경로당 주변의 풀밭에서 나는 가을벌레 소리를 들으며 몸을 이리뒤척 저리뒤척하며 온갖 생각에 잠기다가 까무룩 잠이들었다.

 

 10월11일

        

   새벽에 잠을 몇 번 깼다. 여섯시 정도 일어나 눈을 뜨니 아직 어두운가운데 안개가 아주 짙게 끼어 있었다. 어둡고 쌀쌀하여 침낭속에서 움츠리고 있는 사이 날이 점점 더 밝아지고 있었다. 아차싶어 난 서둘러 짐을 바이크에 싣고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하였다. 안개속에 국도변이 신비롭게 다가온다. 도로주변에 유정란 양계장이 하나 있었고 마을 옆으로 깨끗한 작은 개울하나가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아직 이른 아침이기에 차는 한 대도 보이지 않고 안개속에서 새소리와 물소리의 합창으로 시끄럽다. 오늘은 바쁜 날이 될 것이다. 아직 어디로 어떻게 돌아봐야 할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춘천 방향? 아니면 그냥 북쪽으로 달려가 사람손을 덜 탄 시골길들을 달려볼까? 안개에 싸인 동네주변을 돌아보고 일단 화천읍으로 가기로 했다. 짙은 안개속에서 파로호주변을 따라 나있는  461번지방도를 천천히 이동했다. 가는 길에 구만리선착장 입구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식당아주머니를 만났다. 안개가 자주 끼는지 물었더니 이맘때쯤은 날마다 안개가 짖게 낀다고 한다. 해가 떠오르자 안개들이 급속하게 걷히기 시작하고 멀리 화천댐이 흐릿하게 보인다. 자유수호탑을 지나 고개를 내려가 어제 밤에 건넜던 검문소앞 대붕교를 다시 건너 안개속의 북한강변을 따라 화천읍에 도착, 강변쪽을 돌아보았다. 지도를 보고 방향을 정하느라 고민하는 사이 해가 더 높이 떠오르고 안개들이 다 사라져 북한강과 강변주변의 경관이 선명히 드러나 보인다. 기대만큼 아름답지는 않다. 우리의 산야는 왜 사람들 손만 조금이라도 타면 아름다움이 사라져야 하는가.... 나는 춘천주변의 강변을 보기보다는 그냥 사람손을 덜탄 전방지역의 지방도를 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보고싶어하던 길의 모습이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 일단 위로 달려가고 보는거다.

   

   파로호 가던 길로 되돌아가 460, 461지방도가 분기되는 대붕교검문소 앞에서 다리를 건너지않고 않고 직진하여 460번 지방도로 계속 달렸다. 지방도라고 하지만 길이 2차선 아스팔트길로 잘 정돈되어 있다. 검문소를 지나 시속 40km의 속도로10분가량 달리다 보니 고개길 앞에 재미있는 표지판이 하나 보인다. 바이크를 세우고 자세히 보니 '전설속의 처녀고개'란다. 무언가 사연이 있는 고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고개길을 보니 아주 험한 고개도 아니고 특별히 눈에 띨 만한 어떤 개성있는 것도 전혀 없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서야 나는 이 고개에 대한 이야기를 알 게 되었다. 그럴줄 알았으면 주변을 좀더 잘 촬영해 놓을 걸 하는 후회가 든다. 너무나 특징이 없는 고개였기에 쉽게 지나쳐 버렸다( 〓≫처녀고개전설). 산들이 많고 계곡 사이로 작은 소로들이 있을 뿐이기에 특별히 도중에 들어가 돌아볼 만한 길들은 보이지 않았다. 

 

   풍산리를 지나 평화의 댐으로 들어 가는 고개를 올라가 해산터널을 통과해 꼬불꼬불 굽이치는 고개길을 달려내려가는데, 주변을 보니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다. 북쪽이라 남쪽보다 일찍 단풍이 물든 것이다. 화천에서 평화의 댐으로 넘어가는 고개는 상당히 굴곡이 있어 코너링을 즐기는 라이더들에겐 좋은 곳 같았다. 물론 조심해야 한다. 차량통행이 드물긴 하지만 마주오는 차량들도 있고 길옆은 절벽이다. 고개를 거의 내려가니 아직 포장되지 않은 도로와 댐공사를 위해 움직이는 대형 덤프트럭들이 많이 보였다. 비포장도로를 몇백미터 달려가니 평화의 댐이 보인다. 공사를 끝내려면 아직도 많이 남은 것 같다. 평화의 댐에 얽힌 우습지도 않은 이야기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왕 온 김에 돌아보기로 하고 댐옆의 비목공원과 휴게소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특별히 볼만 한 것도 없다. 과거 군사독재정권과 그들을 비호하던 썩은 언론들의 체제유지를 위한 장난이 만들었던 부산물중의 하나가 바로 이 평화의 댐이다. 이제 군사정권은 물러났지만 과거 그들의 주구노릇을 하던 조중동을 위시한 쓰레기같은 언론들은 고스란히 남아 이제는 오히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그들은 이나라에서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인들과 관료들, 죽은 교육제도와 더불어 가장 암적인 존재들이다. 평화의 댐 위쪽의 수몰지역을 돌아보고 사진에라도 담아보고 싶었지만 민간인 통제구역이라 진입할 수 없어 안타깝다.

 

   460번지방도로 달리다보니 민통선임을 알리는 푯말이 보인다. 아무런 검문없이 내가 여기까지 들어온 것을 보면 과거보다 통제가 많이 줄어든 것 같다. 1980년대 군복무시절 난 연천쪽의 전방에서 근무했었는데 당시 민통선은 통제가 매우 심해서 민간인들이 들어오려면 허가를 반드시 받아야만 했다. 임진강변에 부대가 있었다. 가끔 민간인들이 낚시하러 임진강에 몰래 들어오곤 했었다. 정말 전방의 임진강엔 5월이면 산란하러 온 팔뚝만한 고기들로 과장해서 말하면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었다. 비상시 출동하는 우리대대의 5분대기조(이게 뭔지는 군대갔다 온 사람은 다 앎)는 가끔 이들 낚시꾼들을 쫓아내러 출동하곤 했었다. 한번은 우리 2중대 2소대의 상병 둘이 낚시꾼들을 쫓아내러 갔다가 이들이 말을 안듣자 공포탄을 쏜 적이 있었다. 낚시꾼들은 놀라서 혼비백산 달아났고 이들은 사단에 군인들이 자신들에게 총을 쏘았다고 항의를 했다. 결국 중대가 집합당하고 난리가 났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되는 우스운 이야기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유행하던말, '군인정신은 제정신이 아니다.' 지나고 나니 모두 추억이다. 그때의 전우들은 지금은 무얼 하고 있을까....  

 

   이십분 정도 달리다 보니 작은 마을과 막 학교에서 끝나고 나오는 아이들이 보였다. 엔진을 식힐겸 잠시 세우고 그 꼬마들과 장난을 하며 보냈다. 사진을 찍어달라기에 몇 컷 찍었다. 어떤 자세가 좋을까 생각해 봤는데 그냥 클래식자세가 최고인 것 같아 길가 나무아래 세우고 셔터를 눌렀다. 사진은 나중에 이메일로 보내주었는데 한 녀석은 메일로 답장을 보냈다. 그런데 여자애 둘은 오토바이를 태워 달란다. 짐이 잔뜩 실려 탈 곳도 없는데, 한 아이는 연료통 위에 앉히고 한녀석은 뒤에 매달린 배낭과 나 사이의 좁은 틈에 태우고 천천히 달려 집에 데려다주었다. 애들이 너무 순진하고 때가 묻지 않았다. 시골여행에서 맞볼 수 있는 큰 즐거움중의 하나이다. 그중 한 아이는 수진이란 아이인데 아빠가 직업군인이고 GOP(쉽게 말하면 최전방 철책초소, 또 GP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독립초소임)에 근무하고 있어 집에 자주 못 와 아빠가 많이 보고싶다고 했다. GOP, 아이를 통해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그 동네의 지명은 방산리였다. 작은 마을옆에 깨끗한 냇가가 흐르고 있었다. 길가의 식당에 들어가 김치찌게로 점심을 해결하고 새벽추위에 대비해 덧입었던 우의를 벗었다. 냇가를 따라 나있는 460지방도를 따라 천천히 달렸고 가끔 내려 쉬었다. 지나가는 차들은 하나도 없다. 도로변은 코스모스꽃들이 활짝 피어있고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에는 한눈에 커다란 고기떼들이 보인다. 시골도로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조용하고 깨끗한 도로이다. 가로수들이 없는 것이 조금 아쉽다. 주변의 산세들도 그리 험하지는 않다. 고방산리의 구불구불한 고개를 올라가니 작은 터널이 하나 나왔다. 터널을 통과해 고개를 내려가자 31번국도와 길이 합쳐졌다.

 

  31번국도로 1km 정도 달려 내려갈 때 난 국도변의 한 작은 민가에 앉아 누구를 기다리는 듯한 할머니를 볼 수 있었다. 언듯 본 할머니의 눈에는 분명 외로움과 기다림의 눈빛이 가득했다. 한참을 가다가 다시 오토바이를 되돌려 그 집앞으로 갔다. 할머니는 나를 보자 다짜고짜 예수를 믿느냐고 물으신다. 아니라고 하자 할머니는 중풍이 와서 고생하다 어느날 기도후 꿈에 예수님을 만나 병을 고친 얘기를 하며 내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열심히 포교를 하신다. 꿈에 예수님이 나타나 손을 내밀며 '일어나 걸으라'하시니 바로 잠에서 깬 후 굳었던 팔다리가 움직여지며 중풍이 나았다는 것이다. 혼자 그 집에서 사시는 것 같아 가족을 물어보니 가족이 전혀 없으시다. 어린 시절 시집을 가 딸을 하나 낳았지만 그 집에서 쫓겨나고 그 이후로 가족들도 한번 본 적없이 계속 혼자 지내셨고 지금은 자신의 호적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할머니는 국도변에서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오래전에 헤어졌던 딸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록조차 없다면 할머니의 딸은 자신의 진짜 어머니를 모르고 살 수도 있다. 연세로 보아 분명 지금쯤 손자들, 어쩌면 증손자들도 있을텐데... 나는 지금도 가끔은 오지 않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할머니가 생각나곤 한다.  

 

   15km정도를 더 달려 내려가자 곧 양구읍이 보였다. 읍내는 행사때문에 현수막들이 많이 걸려있고 사람들도 많이 붐비고 있었다(아마도 체육대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골읍치고는 크기도 크고 읍내도 깨끗한 편이었다. 이미 오후 3시가 되었다. 이제 춘천으로 가야한다. 읍내를 벗어나는 지점에 오토바이수리센타가 하나 보였는데 내 바이크에 아무 문제가 없었기에 들릴 필요는 없었다. 경험해보니 우리나라는 시골에도 웬만한 읍내에는 수리점이 하나씩은 다 있기에 국산 바이크라면 원거리 지방여행에서도 고장에 대한 큰 걱정은 안해도 될 것 같다. 아직 대배기량은 대부분 비싼 외제에 의존하고 있는데 성능좋고 믿을만한 국산 중간급 배기량 바이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구를 벗어나서 춘천가는 방향을 알리는 도로표지판을 따라 곧 46번 국도에 들어섰다. 춘천까지는 65km거리이다. 아마도 양구와 춘천을 연결하는 이 국도구간은 경춘국도와 더불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드라이브코스일 것이다. 소양호를 끼고 굽이굽이 물결치듯 국도가 연결되어 있다. 도로 중간중간 도로공사 하는 곳이 보였다. 시속 40km를 유지했고 가끔씩 도로변에 바이크를 세우고 구경도 했다. 지나다니는 차량들도 그동안의 도로들에 비해 많다. 양구, 인제 방면에서 춘천으로 연결된 주도로이기 때문인 것 같다. 추곡터널을 지나서 가다가 두팀의 라이더들을 보았다. 서울에서 온 것 같다. 600cc 이상급 일제 같은데 레이싱복장을 완전히 갖추고 달리니 아주 멋있다. 굉음과 함께 나를 마주쳐 지나가 버렸다.

 

   춘천에 도착하니 벌써 5시가 다 되었다. 주행거리가 305km, 연료계기가 붉은 선을 가르키고 있다. 근처의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다시 가득 채웠다. 기름값 9000원, 이제 다시 300km를 달릴 수 있다. 오는 도중 휴게소에서 사 마셨던 생수 0.5리터 한병이 500원, 휘발유가 1리터에 천이백원대, 물값이 비싼건지, 기름값이 싼건지?..... 춘천에서 화천으로 가는 56번, 5번 국도 또한 멋진 라이딩코스이다. 국도를 따라 계속 북한강이 펼쳐져 있다. 바이크를 세우고 돌아보고 싶지만 시간도 늦었고 무엇보다 뒤에서 달려오는 차량들 때문에 위험스럽다. 모두 제한속도보다 10-30km정도 빠르게 달리는 것 같다. 시속 60km 정도로 강변주위를 돌아보며 한참을 달리다 보니 작은 읍내가 하나 보인다. 화천읍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일기예보에 비가 온다는 말이 있었다. 텐트를 치면 내일 아침이 문제다. 중국집에서 짬뽕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읍내 주변을 다니면 야영할 곳을 찾았지만 마땅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화천읍도 주말이 되니 어느 도시 못지않은 분위기로 바뀐 것 같다. 주말이라 놀러온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 같고 군인들도 많이 나와 있었다. 밤이 되니 술집, 음식점들의 불빛이 읍내 중심지를 밝게 밝힌다. 결국 8시가 되어서야 읍내 외곽의 허름한 여관을 잡았다. 같은 여관에 묶고 있는 외박나온 군인 몇몇이 여관밖 마루에 앉아 술을 마시며 이것저것 뻔한 군발이들의 이야기들을 토해내고 있다. 나도 저러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여관아주머니 말로는 TV가 잘 나온다고 하더니만 방에 들어와 TV를 켜보니 나오는 채널이 하나도 없다. 싸구려여관이란게 다 그렇지 뭐... 너무 깨끗하고 정돈이 잘 되어 있으면 오히려 재미가 없다. 캔맥주 한잔으로 하루를 돌아보며 나그네의 여독을 푼다. 오늘도 내가 보고 싶어하던 길을 보지는 못했다.

 

10월12일  

 

   새벽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어두운 가운데 짙은 안개만이 보인다. 야영장비를 이용 식사를 마치고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조금씩 날이 밝아지자 바이크의 예열을 위해 시동을 걸어두고 짐을 하나하나 달기 시작했다. 새들백과 배낭, 예전에 여행할 때 가지고 다닌던 장비가 거의 다 있다. 바이크로 이동을 하니 휴대장비 무게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큰 장점인 것 같다. 오늘은 파로호 안쪽을 더 돌아보고 경춘가도를 달려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침안개가 강을 따라 뿌옇게 끼어있다.  461번 지방도를 따라 파로호를 끼고 다시 용호리 방면으로 달려갔다. 이 길은 벌써 세 번째 달리는 길이다. 오늘도 안개낀 호수를 보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안개가 어제보다 많지 않다. 오음리 주변의 비포장도로들을 헤메고 돌아다녔다. 여기저기에 조용하고 깨끗한 마을들이 보인다. 일요일 아침의 시골마을은 더욱 조용하다. 비온다는 일기예보와는 달리 곧 아침 햇살이 논밭에 비추며 아름다운 가을 풍경이 여기저기에 펼쳐져 있다. 길옆의 논에는 누런 벼이삭이 이슬에 젖어 고개를 숙이고 있고 산아래의 밭들은 이미 어느정도 추수가 끝나 텅 비어있거나 추수하고 남은 깨들이며 콩줄기들이 보인다. 아무 길이든 끝이 나올 때까지 가보기로 한다. 드디어 미루나무가 몇 개 서있는 좁은 오솔길의 끝에 다다르자 산속의 농가가 하나 보인다. 순간 개짓는 소리와 더불어 진돗개, 발발이, 똥개 등 여섯 마리의 개들이 짖으며 내게 달려 들었다. 주인이 문을 열고 나온다. 길을 잘못들어 미안하다 말하고 다시 돌아 내려왔다. 이동네 똥개들은 정말 사납다.

 

   여기저기를 헤메고 다니다 이제 춘천으로 방향을 돌렸다. 화로호를 따라 다시 달려간다. 호수의 물이 많이 빠져있다. 평화의 댐 공사 때문에 수위를 낮추었다 한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낚시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도로도 어제보다는 차량들이 많다. 자유수호탑 가기전 길가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 경기도에서 온 아줌마아저씨 부대를 만났다. 산열매를 딸겸 등산온 것 같다. 반갑다며 따뜻한 커피를 한잔 타서 준다. 도로가 많이 좋아져서 사람들이 야생열매나 나물을 채취하러 어디든 다닌다. 이제 이 좁은 나라에서 시골은 얼마 남지 않았다. 외진 시골에 길이나서 교통이 좋아지고 그곳 사람들 생활이 편리해 지는 것은 좋은데 곧 돈많은 장사꾼들이 새로난 길을 따라 들어와 땅을 사 상가, 식당을 짓고 곧 마을공동체가 무너지고 순박했던 사람들이 변해가는 것이 아쉬운 것이다.

 

   화천으로 나가서 어제 춘천에서 왔던 5번 국도로 다시 달렸다. 서울로 돌아가는 차량들도 적지 않게 보인다. 주변을 돌아보면서 가다가 작은 소로가 나오면 그곳으로 빠져나가 여기저기를 돌아보곤 하였다. 간혹 추수한 콩이나 깨를 털기위해 집앞 길에 널려놓아서 길이 막혀있기도 하다. 농사일을 방해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일하던 아저씨는 오히려 길을 막아 미안하다며 위로 밟고 지나가라 한다. 이런 시골길에서는 바이크가 작을수록 좋다. 비포장길을 다니기 좋고 현지 주민들을 자극하지도 않는다. 멋진 외형에 우렁찬 큰 배기음의 할리나 날카로운 일제 바이크의 고속 배기음보다도 조용하고 외형도 소박한 국산 바이크가 여러모로 더 어울릴 것이다.

 

   고시락고개 주변의 작은 농로를 따라 올라갔다. 추수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보이고 밥을 머리에 지고 나가는 시골 아낙의 모습이 정겹다. 시간을 보니 벌써 2시, 점심때가 지났다. 좁은 길을 더 거슬러 올라가니 작은 학교가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폐교된 시골 초등학교였다. 풀이 여기저기 난 작은 운동장 앞에 책읽는 소녀의 석고상이 보인다. 몸체의 여기저기에 조각들이 떨어진 모습이다. 이 소녀상은 시골의 천진한 아이들이 이곳에서 소리지르고 뛰어놀던 옛날이 그리울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서지고 사라져 버리겠지만 나의 이 허름한 홈이 존재하는 동안은 이곳에서 편안하게 책을 읽게 해주고 싶다.

 

 

   

   춘천댐에 다다르니 길이 춘천으로 가는 56번 국도와 춘천을 마주보고 의암호를 끼고 달리는 70번 지방도로 갈라진다. 더 많은 차들이 시내를 거치지 않는 70번 지방도로 달려나간다.  70번 지방도로 달려나가다 보니 길 양옆에 노란 국화꽃이 만발하다. 아주 아름다운 도로다. 서울로 돌아가는 차들이 2차선을 무서운 속도로 달려와 60km 정도로 달리는 내 뒤에 달라붙어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이 사이드미러를 통해 보인다. 모두 통과하도록 속도를 줄이고 길옆에 바싹 붙여 세웠다. 바로 뒤의 운전자는 고맙다는 표시를 하고 내 옆을 달려나간다. 그 뒤의 차들도 맹렬하게 뒤따라 달려나간다. 길을 계속 달리는 중 재미있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대배기량을 탄 라이더 둘이 굉음을 내며 고속으로 차량들을 추월하며 달려가는데 좁은 2차선에서 옆으로 바싹 붙어서 승용차 하나를 추월하려고 하니 당황한 승용차 운전자가 쩔쩔맨다. 그 승용차도 제한속도를 넘은 과속인데 그 차를 위협하는 오토바이라니... 내가 과속 승용차들에게 위협을 느끼듯이 이번엔 승용차운전자가 라이더에게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위협의 종류는 다를 것이다. 내가 느끼는 것은 내 안전에 대한 위협이지만 저 승용차운전자가 느끼는 위협은 혹시라도 모를 사고에 대한 책임이나 그에 대한 금전손실에 대한 위협일 것이다.

                  

   춘천시가 마주보이는 한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루어낚시하는 사람이 하나 보이고 주변에 차를 마쉬고 쉬고 있는 운전자들도 많이 보인다. 엔진을 식히고 다시 출발하여 곧 의암댐, 삼악산 입구를 지나 강촌앞에 도착했다. 주말여행 온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다리 위로 걸어서 건너오는 젊은 아가씨들이 많이 보였다. 옛날에 이 다리 옆에 출렁다리 하나가 있었는데, 눈오는 겨울날 친구와 그 다리를 건너던 기억이 난다. 당시 강촌은 작은 마을이었고 역근처에는 작은 식당과 민박집 몇 개만 있었다. 지금은 커다란 유원지로 변해 있다.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옛날은 항상 그립다.

 

   의암댐부터 넓어진 커다란 도로는 춘천방향에서 오는 46번 국도다. 왕복 4차선의 넓은 길인데 도로상태도 좋은 편이고 차량들의 속도도 고속도로를 방불케 한다. 그런데 오후부터 흐려지기 시작한 날씨는 검은 구름으로 더욱 어두워지고 빗방울이 간간히 떨어지기도 한다. 가평을 얼마 앞두고 서울 70km를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주행계를 보니 450km를 달렸다. 가평주변을 돌아보려 했지만 가평의 한 소로로 빠질 무렵 비가 마구 쏟아지기 시작한다. 더 이상의 여행은 힘들 것 같다. 마을 근처 비를 피할 수 있는 처마에 바이크를 세워놓고 우비를 꺼내 입었다. 간간히 바이크의 굉음이 들린다. 바라보니 다리를 건너는 라이더들이다. 비가 이렇게 내리는데 저런 속도면 위험하지 않을까 생각도 드는데 경험이 많은 라이더들 같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지만 비는 멈추지 않는다. 용기를 내어 국도로 다시 나갔다. 이런 상황에서의 고속주행은 경험이 없어 좀 걱정이 된다. 내가 한번 미끄러지는 것은 괜찮지만 뒤에서 고속으로 달려오는 차량들이 문제다. 길위로 미끄러져 넘어진 라이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길위에서 사고로 죽고 싶지는 않다. 할 수 없이 나는 과속차량들이 몰려오는 동안은 비상등을 키고 갓길로 시속 40km로 달리다가 차량들이 다 지나가자마자 일차선으로 나가서 시속 60-70km를 유지하는 방법을 취했다. 가끔씩 보이는 신호등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신호등 때문에 도로에 차량들이 뜸한 시간이 주기적으로 생기고 그때가 나에겐 안전하게 속도를 낼 수 있는 시간이다. 비가 이렇게 오는 날씨에 시속 100km가 넘게 달리는 4륜자동차들과 125cc 바이크로 보조를 맞추기는 불가능하다. 다시 차량들의 불빛이 사이드미러에 반사되고 나는 갓길로 빠졌고 수많은 차량들이 나를 추월해 지나갔다. 내리는 비속에서 이렇게 달리는 기분도 나쁘지는 않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상황이 나타났다. 청평부근이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달리던 차량들의 속도가 아주 젊잖게 변한 것이다. 40-50km로 떨어졌던 차량들의 속도는 급기야는 서다가다를 반복하더니 급기야는 기어가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나로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통쾌한 시간이 온 것이다. 나는 국도변의 갓길을 시속 30km정도로 여유있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더 빠르게 달릴 수도 있지만 혹시라도 차량에서 내릴 지도 모르는 사람이 신경쓰인다. 아까 무시무시한 속도로 나를 추월했던 차들을 이제는 내가 여유있게 추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청평에서 남양주시까지 계속되었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갓길로 남양주시까지 오니 길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더니 다시금 차량들이 맹렬하게 서울로 달리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성질이 급하긴 급한가 보다. 가다가 기다리는 한이 있어도 기회만 되면 가능한한 빨리 달린다.

 

   비는 이제 완전히 그쳤다. 망우리 고개를 넘어 시내로 들어오니 다시금 차들로 꽉막힌 시내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 그래도 소통이 원활한 도로를 찾아 달리다 보니 어느새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휴하고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수 많은 차들과 도로를 걷는 사람들... 마치 전혀 다른 세계에 머물다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 지체되지 않고 제기동, 삼선교를 거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시간은 벌써 밤 9시다. 주행거리 총 527km, 의정부에서 계기를 '0'으로 맞추었기 때문에 실제거리는 550km 정도 될 것 같다.

 

   길을 찾아 떠난 나의 첫 번째 바이크여행이었다. 그러나 내가 기대했던 길을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가 보고싶어하는 그 길이 어떤 것인지는 이제는 나 자신도 정확히 모르겠다.

 

- 화천 파로호 모터사이클 여행기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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