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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차투어 : 양평 용문산 모터사이클 여행기

  

* 10월의 가을하늘아래 서있는 용문사의 1100년된 은행나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 나무는 높이 60m 둘레가 14m에 이른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이 은행나무는 신라의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 심은 것이라고도 하고,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꽃아놓은 것이 뿌리가 내려 이처럼 성장한 것이라고도 한다. 공원에서 해발 1,064m의 용문산으로 오르는 길목에 있는 용문사 바로 아래에 있다. 몇 년전 비오는 날 용문산에 오른 적이 있는데, 아쉽게도 정상에 군부대가 있어 정상에 오를 수는 없었다. 당시 용문산은 정말 깨끗했었다. 이번 투어에서는 산에는 오르지 못했다. 

 

2003년 10월 5일

 

   최초의 텐덤(동승) 투어였다. 저녁 8시에 대학로에서 동생을 태우고 출발했다. 앞집 1700cc 혼다 크루즈를 타고 다니는 아저씨에게 용문산가는 길에 대한 정보는 미리 들었다. 신설동에서 장안동으로 가는 길을 따라 워커힐쪽으로 빠져서 한강변을 타고 달리면 한시간이면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요일 저녁이어서 시내도로는 그런대로 뚤려 있었다. 그러나 어느정도 뚤린 도로는 언제나 위험한 기분이 든다. 차량들의 속도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시내 제한속도는 대부분 시속 60km, 하지만 도로만 뚤리면 이 속도를 지키는 차는 거의 없다. 좀 느리게 가면 가끔가다 사정없이 밀어붙이는 차들도 있다. 식은 땀이 오싹하고 난다. 특히 지나가면서 옆으로 밀어대는 차들은 남들이 죽든말든 신경도 쓰지 않는 사람들 같다. 그렇다고 무조건 속도만 올리기에는 아직 경험도 부족하고 또 경험이 많다하더라도 위험한 일이다. 이 좁은 나라에서 왜이리 빨리 달리려고만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많은 운전자들이 기회만 되면 추월하고 과속한다. 빨간 신호등이 앞에 보여도 가서 기다릴지언정 그 앞까지 최대한 빨리 달리고 추월을 시도한다.

 

   광나루역에서 좌회전하여 지도대로 43번 국도로 들어섰다. 차량들이 제법 달린다. 일차선에 붙어서 비상등을 키고 뒤에 앉은 동생에게 X반사반도를 입힌 후 40-50km로 계속 달렸다. 챠량들이 옆으로 추월하며 부지런히 지나가고 한동안 넓은 국도에는 나의 바이크만이 외롭게 소리내며 길을 달려나간다. 구리시 근방에 갔을 때 한강변에 있는 자동차영화관을 만났다. 코스모스축제도 벌어진 모양이다. 적어도 백대 이상의 차들이 주차되어있고 앞에 대형스크린이 펼쳐져 있다. 여기저기 돌아보고 음료수를 사 마신 다음 다시 출발하였다. 시간이 갈수록 밤 기온이 점점 차가와 진다. 제법 추웠다. 고속주행이 아닌데도 추위가 옷속으로 마구 파고들어 온다. 금방 도착할 것 같은 양평이 생각보다 많이 걸린다. 시속 40-50km의 저속이라 그런 모양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동생까지 태우고 있으니 가능한한 안전하게 가야만 한다. 더구나 이제 겨우 두 번째 바이크투어다. 6번국도로 들어서서 가는 도중 길가에 이륜차통행금지 표시가 보였다. 이런! 표지판을 저기다 세워놓으면 어떻게 하란 말이야. 이미 다른 길로 빠질 수 있는 통로를 지나 왔는데... 그냥 계속 달린다. 터널이 나오고 통과하자 또 터널이 나오고 몇 개의 터널을 통과했다. 텅빈터널을 바이크하나가 지나가는 기분이 붕뜬 기분이다. 엔진소리의 울림, 터널속의 조명들....

 

   양평에 도착하니 이미 열한시는 된 것 같다. 용문산 근처까지 6번국도를 타고 갈 수도 있지만 춥고 배가 고파서 양평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기위해 빠져 나왔다.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오뎅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한후 작은 국도를 따라 용문산으로 향했다. 늦은 시간의 시골이라 그런지 가로등도 없고 지나가는 차량이나 사람들도 아무도 없다. 바이크의 라이트에 길옆에 서있는 은행나무들이 보인다.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아 어두운 빛으로 보인다. 인터넷에서 뽑은 지도가 있지만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다. 한국관광공사 홈에 있는 지도와 한 지도사이트에 있는 지도가 너무 다르다. 어떻게 똑같은 지역의 지도가 지명조차 다를 수 있는지... 그래고 어떻게 관광한국을 열 수 있는지 한심한 생각이 든다. 그래도 예전 용문사 갔을 때의 기억과 도로표지판을 참고 삼아 어렵지 않게 용문산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용문사까지 바이크를 타고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용문사 입구의 야영장에 텐트를 쳤다. 날도 서늘하고 텐덤을 해서인지 더 피곤했다. 가져간 에어매트를 두 개 넓게 깔고 침낭을 펼친다음 그냥 잠에 빠져 버렸다.

    

   아침 7시에 눈을 떠보니 주위가 온통 뿌옇다. 아침안개가 짙게 깔려 텐트도 온통 젖어있었다. 동생은 더 자도록 두고 혼자 바이크를 타고 용문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야영장 앞에 놀이터가 새로 생긴 것 같았다. 시간이 가면서 안개가 점차 걷히고 햇살이 조금씩 비치기 시작했다. 동생을 깨워 용문사에 운동삼아 걸어 올라갔다. 절 바로 아래에는 큰 은행나무가 무성한 푸른잎에 싸여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용문사를 돌아보고 부처님께 기도도 올리고 약수도 마시고 모처럼의 여유있는 시간이다. 참고로 난 무신론자인 동시에 다신론자이기도 하다. 용문사에서 걸어 내려오니 용문사입구가 아이들 함성으로 온통 시끄럽다. 초등학교에서 놀이공원에 소풍을 온 모양이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서울 OO초등학교에서 왔다한다. 이슬이 마른 텐트를 걷고 바이크에 달았다. 오전 열시정도 된 것 같다. 다시 양평으로 출발을 시작했다. 밤에 보았던 도로변의 은행나무들이 낮에 보니 제법 보기 좋았다.

 

   중원계곡에 가기로 하고 용문사에서 나오는 길에 작은 길로 빠져나왔다. 작은 일차선 도로가 냇가를 따라 나 있고 주변의 논엔  누렇게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날씨는 아주 좋다. 먼 산위로 구름이 떠있고 그 아래로 푸른 들이 널려져 있다. 바이크여행의 진미가 느껴지는 순간이다. 주변의 냄새며 느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서둘러 달릴 필요도 없다. 좁은 농로를 따라 시속 30km 정도로 30분가량 달려가니 작은 마을과 계곡이 나왔다. 그리 크지 않고 특별한 곳도 없는 계곡이다. 예전에는 깨끗하고 조용했겠지만 식당 몇 개 생기고 주변 좀 파헤치고 하면 망가지는거야 뭐 뻔한거니까. 철지난 지금은 찾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좋은 곳으로 알려진 곳이기에, 좀 더 올라가면 더 볼 것이 많을 것도 같지만 걸어서 거기를 다녀오려면 시간이 부족하게 될 것 같아 마을주변만 돌아보고 다시 용문사길로 돌아 갔다. 왔던 길로 다시 돌아나가 다리를 막 건넜는데 길가에 배를 파는 천막이 있다. 서울보다 싸고 싱싱한 것 같다. 몇 개는 먹고 나머지는 새들백과 배낭에 억지로 밀어넣었다.

 

   

   밝은 대낮이고 밤에 왔던 길이었기에 양평까지 나가는 길은 쉬웠다. 나가는 도중에 넓고 깨끗한 냇가가 보였다. 몇 사람들은 텐트를 치고 낚시하는 모습도 보였다. 넓고 깊은 냇가옆으로 도로가 두 개 나 있는데 특이하게도 일방통로이다. 사진에서 보는 아래길은 용문사쪽으로 들어오는 길이고 위쪽은 나가는 일방통행길이다. 위쪽길 바로 위로는 철길이 있었다. 이길은 약 700-800m 전방에서 다시 하나로 합쳐진다. 길 주변으로 녹음도 우거지고 이 투어에서 본 개성있는 길이었다. 양평까지 나가는 길은 될 수 있으면 구도로를 택했다. 차도 별로 없고 바이크타는 분위기도 더 느껴지기 때문이다. 양평으로 가는 구도로 바로 옆에는 6번국도가 나란히 있는데, 서울로 들어가는 차량들이 쌩쌩거리며 바쁘게 달려가는 것이 보인다. 구도로와 신도로가 일부구간은 합쳐지기도 한다. 양평에서 서울로 가는 길도 6번국도 말고 옆에 있는 작은 국도를 따라 가기로 하였다. 2차선이 겨우되는 좁은 도로다. 시간이 걸리는 대신 길가에 코스모스와 나무들도 많이 있고 가을분위기가 훨씬 많이 풍기기에 오히려 여행하는 기분이 더 난다. 물론 시간은 훨씬 더 많이 걸린다. 가는도중 도로변의 한 식당에서 식사후 가두원 부근에서 갈라진 국도를 따라 양수교를 건너고 45번국도를 따라 서울 방향으로 향했다.

 

* 도중에 작은 사고가 발생했다. 식당으로 가려고 6번국도에서 몸을 눕히며 핸들을 돌리는 순간 길위의 작은 자갈들로 인해 순간적으로 슬립이 일어났다. 넘어지는데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눈깜짝할 순간이었다. 다행히 둘다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었고 범퍼까지 단 상태였기에 조금도 다치지는 않았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후로 도로위에 모래나 자갈, 물, 기름같은 바이크를 미끄러지게 할 수 있는 것들이 보이면 아주 긴장하게 되었다.

        

   도중에 지나온 양수교주변은 지금도 아담하고 아름다웠다. 연꽃피는 철에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양수교로 통하는 국도는 길도 좁은데 왕래하는 차량들은 많은 곳이다. 양수교를 건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불안한 느낌이 든다. 십이년전인가 그때 밤에 양수교를 걸어서 건넌적이 있는데 얼마나 무시무시하게 차들이 지나다니던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양수대교가 생긴 지금도 그것은 여전하다. 사고도 예전에 많이 났던지 아이들을 위해 안전한 인도를 만들어 놓았다. 양수교와 만나는 45번국도도 춘천쪽에서 내려오는 차들로 길이 많이 막히는 편이다. 작은 도로를 따라 가다 결국 구리시로 들어가기 위해 6번국도로 다시 들어섰다. 여기부터 좀 고전하기 시작했다. 서울로 밀려들어오는 차량들이 아주 많은데 동생을 태우고 달리자니 속도를 많이 낼 수 없었다. 125cc의 한계인 것이다. 그래도 대부분의 차들은 조심스럽게 추월해 갔다. 난 갓길로 붙어서 다른 차량들에 방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한 덤프트럭이 가장자리로 바싹붙어서 가는 나의 곁을 밀어붙이듯 밀고 맹렬한 속도로 지나간다. 순간 동생이 깜짝 놀란다. 위험한 순간이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사고나는 바이크도 많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나는 굉장히 화가 났다. 순간 나중에라도 찾아가 혼을 내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 번호판을 보았다. 그러나 차량의 번호판은 진흙에 가려져 보이지도 않았다. 나 혼자 타고 있었다면 끝까지 좇아갔을 것이다. 아무튼 이 구간이 매우 험했다. 드물게 보이기는 했지만 국도에 깊게 파인 큰 구멍들은 정말 바이크에 아주 치명적인 것으로 보였다. 바이크가 튕겨져 나가기에 충분한 크기의 구멍만도 두 개를 보았다. 하나는 위험표시를 설치해 놓았는데 그 표시가 아예 구멍속으로 들어가 멀리서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아예 속도를 30km정도로 줄이고 갓길로 달려서 구리시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 경험을 해보니 운전차량이 많은 도로에서는 도로의 소통, 즉 평균차량속도를 맞추면서 차선을 차지하는 것이 안전하다. 저속 갓길 운행이 생각보다 안전하지 않았다. 상당수의 4륜차운전자들은 주의깊게 운전을 하지만 소수의 난폭운전자들이 있는데, 이들이 문제다. 그 난폭성의 정도는 차종이나 직업과는 관계가 없었다. 사람들의 개별적 성격문제인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차량의 흐름을 맞추는 것도 쉽지가 않다는 데 있다. 대부분의 차량이 제한속도를 지키지 않는 상황에서 교통흐름을 맞춘다는 것은 똑같이 과속을 해야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이것이 딜레마다.

 

   구리시에서 한시간 가까이 휴식을 취하고나니 벌써 오후 5시가 되었다. 구리시내 도로를 타고 가다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서울로 들어가는 길로 들어서 고개를 넘어 태능으로 빠져나왔다. 그길로 계속가면 빨리 시내로 들어갈 수 있는데 가다보니 이륜차통행금지표시판이 보여 빠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표시판들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가다보면 이륜차금지도로에도 본의 아니게 들어가는 경우가 종종생긴다. 태능에서 신이문, 회기를 통과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도로들이 보통 막히는 것이 아니다. 갈 때 이용했던 워커힐, 장안평코스로 돌아오지 않은 것이 후회되기도 했다. 하지만 외대앞을 지나니 상황이 좀 나아졌다. 도로가 익숙치 않아 최단거리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대충 방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길음을 거쳐 혜화동 로타리에 돌아오니 거의 일곱시가 다 되었다. 짧은 거리였음에도 125cc 동승이라 쉽지 않은 투어였다. 하지만 좋은 계절이었고 좋은 날씨가 있었기에 맑은 가을하늘과 코스모스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던 가을여행이였다.

 

   이후의 바이크여행들은 이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상당히 편안하게 이루어졌다. 사실 오토바이여행다운 여행은 이제부터이다. 며칠후인 10월10일 난 단독으로 파로호 투어에 나서게 된다. 내 마음속에 어떤 느낌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길'을 찾아보고 싶어서였다. 물론 그 시도는 실패했다. 그러한 '길'의 실존 여부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한 길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 열려지지 않는한 그 길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단지 내 마음속에서만 신기루처럼 존재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이후 다시 도전하게 되었던 1448km의 남서해안투어까지 다녀오고 난 뒤였다.

 

 

 - 시월(十月)의 바람을 맞으며: 용문산 오토바이여행기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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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Hwayong, Kim     khy906@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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