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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차투어: 대부도, 선재도, 영흥도 모터사이클 여행기


 

 

   바이크사용신고도 마쳤고 면허도 땄고 난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라고 있었다. 근처 약수터나 시내를 다니면서 시내주행의 감각을 조금씩 익혔다. 그러나 시내주행의 경험이 전혀 없었던지라 아직도 시내도로의 주행은 조금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막힐 때면 한없이 막히다가 조금이라도 풀어지면 무섭게 달리는 버스와 승용차들. 그러나 서두르지 않고 일차선에 붙어서 조금씩 속도를 높여 나가니까 점차 적응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내가 바라던 기회가 왔다. 추석을 전후한 연휴였다. 수도권의 근거리를 잡기로 하였다. 원거리는 귀향, 귀경 차량들로 길이 막힐 것이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결국 정해진 곳이 대부도였다. 80리터짜리 배낭에 짐을 채웠고 몇가지 물건들을 퇴계로 상가에서 산 싸구려 새들백에 채워 넣었다. 안전을 위해 야간반사가 되는 X반도를 을지로에서 구입해 착용했다. 모양새는 이상하지만 안전을 위해 기꺼이 그 방법을 선택했다. 이 방법은 후에 안전을 위해 아주 효과적인 수단이었음이 주행,  특히 야간주행을 통해 확인됐다.

 

   대부도 투어는 나의 첫 번째 투어였다. 경험이 없던 관계로 거리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렸다. 또 투어지가 여행목적이라기보다는 앞으로의 바이크 여행을 위한 경험을 쌓는다는 의미에서 결정되었기에 아주 인상적인 여행은 아니었다.

 

2003년 9월 10일

 

   오후 4시경 혜화동로타리에서 출발 비원앞길, 광화문, 서울역을 통과해 곧 한강대교를 건넜다. 아직 속도를 내지 못해 기껏해야 시속 40~50km의 속도로 움직였다. 차량들이 많이 빠져나간 서울시내에는 늦게라도 귀경하려는 차량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가급적 다른 차량들의 진행에 방해주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지만 처음 시내주행에 나선 나로서는 무조건 달릴 수만도 없었다. 넓은 길에서도 40-50km로 계속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차량들은 신속하게 나의 옆을 바람처럼 스쳐지나간다. 때로 뒤어서 빨리 달리라고 빵빵거린다. 서울시내 대부분 거리에서의 제한속도는 시속 60km,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조금이라도 길이 트이면 차량들이 미친 듯이 질주하기 시작한다. 나도 맞추어서 달리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더구나 뒤에는 야영을 위한 텐트며 사진장비며 적어도 80리터크기의 짐들이 고무끈에 묶여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 노량진으로 가려했으나 순간 신호등을 놓쳐 그냥 상도터널을 통과해 버렸다. 이리저리 헤메며 부천쪽으로 나가다 길을 잃고 헤메다보니 광명부근에 도달했다. 날도 이미 어두워져 방향 감각도 없어서 지도와 나침반을 보고 대충 방향을 잡아 이길저길 따라 가다 도착한 곳이 소하리였다. 거기에서 트럭에서 전어회를 파는 20대 상인들을 만나 길을 물으니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그러나 이 설명이 사실은 너무 애매해서 가다가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여러번 길을 물어야했다. 초보여행이었기에 시속 40-50km를 유지하였다. 다행히 추석연휴때였기에 차량이 아주 드물었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처음 여행이었기에 도로를 잘 몰라 가는 동안 아주 애를 먹었다. 거기에다가 가다간 길을 알려준 사람들의 각기 다른 설명들, 그리고 엉터리같은 도로표지판들은 나를 더욱 혼란에 빠뜨려 대학로에서 오후 네 시에 출발하여 시화방조제 입구에 도달한 것은 아홉시가 넘어서였다.

 

* 어떤 도로표지판들은 정말 운전자들을 골탕먹인다. 상당수의 표지판이 그곳 지리에 익숙한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그런데 도로표지판이 필요한 사람은 그곳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고 처음방문하는 사람들이다. 주로 겪는 불편은 잘못된 표기나 일관성 없는 표기, 표지판이 부적절한 곳에 위치하는 경우, 갑자기 표지판에서 지명이 사라지는 경우 등 여러 가지이다. 아마도 잘못된 도로표지판으로 발생하는 시간낭비, 기름낭비도 대단할 것이다. 그로 인해 사고의 위험도 커진다. 아마도 표지판을 만드는 사람들은 책상위에서 모든 일을 하는 것 같다.

 

   시화방조제의 도로 위에는 차량이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귀향하고 별로 사람들이 이동하지 않는 모양이다. 속도를 높였다. 50-60-70... 드디어 시속 80km, 이 속도도 초보인 내게는 대단한 속도다. 더구나 뒤에 배낭같은 큰 짐들이 흔들거리고 있어서 가끔 흔들거리기도 한다. 제한속도 80km 표시가 도로바닥에 라이트에 빛나 드러나 보인다. 더 이상 올리지 않기로 하고 달린다. 이속도도로 가더라도 방조제를 건너는 것은 시간문제다. 한참 달리는 중 사이드미러에 자동차의 불빛이 보인다. 점점 가까이 달라 붙더니 내 옆을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다. 내가 80km인데 그런 속도로 지나가려면 아마 시속 110km는 넘고도 남을 것이다. 다행히 내가 둘러맨 야간반사표시띠가 눈에 잘 보여서인지 대부분 안전거리가 확보되는 여유를 두고 추월해 지나갔다. 그러나 한 대는 바로 30cm정도의 거리를 두고 내 옆을 총알처럼 스쳐지나갔다. 미친 운전자이다. 만일 그때 바이크가 진동이라도 생긴다면 나는 사고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살짝만 건드려도 두바퀴의 바이크가 시속 80km에서 균형을 잡기는 아주 힘들 것이다. 30-40분정도 달린 후에 대부도섬으로 진입하였다. 지도를 보고 선재도에서 밤을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밤 10시 대부도에서 선재도, 영흥도로 들어가는 상동 삼거리의 바지락칼국수집에서 식사를 마친후 선재도로 향했다. 도로는 조용했다. 마을들도 불이 거의 꺼진채 너무 고요해서 길옆의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다 들렸다. 나는 바이트의 속도를 30km로 낮추고 라이트까지 꺼 버렸다. 모처럼만에 나온 시골길의 정취를 음미하고 싶어서였다. 상동삼거리에서 영흥도까지의 밤길 주행이 대부도투어에서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되었다. 시골의 흙냄새, 가끔 나는 무언가를 태우는 냄새... 고요.... 적막을 깨는 것은 풀벌레의 노래들과 나의 바이크의 둔탁한 배기음뿐이다.

* 다음날 오전 선재대교에서 바라본 선재도앞 마을공동양식장과 어선들

 

   선재대교에 들어서자 다리위에서 망둥어를 잡는 낚시꾼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가까이 가서보니 그리 조황이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어쩌다 망둥어 한 마리. 벌써 열한시가 다 되었다. 이제 어디 자리를 잡고 야영을 해야한다. 길가변에 여기저기 모텔들이 보이지만 모텔에서 자는 것은 별로 재미가 없다. 작년보다 모텔이 많이 늘었다. 도무지 이 나라는 늘어나는 것이 모텔과 음식점뿐인 것 같다. 선재도를 몇 번 돌았지만 그리 좋은 장소를 찾지 못하였다. 비가 와서 물이 괴인 땅이 많았다. 마을앞 해변가에 괜찮은 장소를 찾았는데 문제는 개들이었다. 개가 네 마리가 있는데 짖고 난리다. 동물들하고 잘 친해지기에 바이크에서 내려서 한놈한놈 꼬시기 시작했다. 곧 한마리한마리 꼬리를 치고 조용해졌는데 마지막 한 놈이 문제다. 아무리 애를 써도 이놈만 계속 짖는다. 이제는 다른 개들이 그놈을 보고 짖기 시작한다. 얼마후 주변의 민가에서 누군가 나오는 것이 보인다. 안되겠다. 빨리 이곳을 떠나야겠다. 선재대교 옆의 파출소에 콘크리트로 바닥으로 만든 넓은 농구장이 있어 파출소에 있는 경찰에게 허락을 요청하였지만 거절당했다. 이 사람은 자신이 시민의 경찰인지 과수원집 마당주인인지 구별도 못하는 사람같다. 할 수 없이 영흥대교를 건너 영흥도로 들어가서 다리건너 주변을 돌았지만 그리 좋은 곳이 보이지 않았다. 영흥대교는 밤에 조명을 밝혀놓아 아주 장관이었다. 새벽 두시가 넘어서야 불을 끈 것 같았다. 다시 선재도로 건너와 이곳저곳을 돌다가 다시 영흥도로 가기를 두세 번 그러던중 도로변에서 십리포해수욕장의 푯말이 보인다. 십리가 아니라 백리라도 그리로 가야되겠다고 맘먹고 아무도 없는 시골밤길을 천천히 달린다. 주변에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있는 것이 라이트에 환하게 보인다. 코스모스 그리고 벌레소리들.......   이틀전 비가 내려 국도 군데군데에 물이 괸 곳이 있었다. 지나갈 때 물이 팍 튀어 오른다. 십리포해수욕장에 진입하는 도로에는 흙탕물 구덩이가 여기저기 있어서 조심조심 천천히 통과했다.    

 

   십리포에 도착하니 이미 철지난 해수욕장이라 그런지 너무 조용하다. 그래도 백사장 여기저기에 텐트 서너개가 보인다. 이미 새벽 3시반은 된 것 같다. 해수욕장 백사장(이곳은 거의 자갈로 된 해변이다.) 옆에 바이크를 세우고 급히 짐을 풀러 텐트를 쳤다. 2인용 소형 텐트이므로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침낭을 풀러 펼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거의 12시간을 쉬지 않고 바이크를 타고 다녔는데도 그리 피곤하지가 않고 잠이 오지 않는다. 그래도 내일을 위해 억지로라도 자야한다. 오토바이 주행중 집중력이 떨어지면 자칫 사고가 나기 쉽기 때문이다.

 

 

9월 11일

 

   4시에 잠이 들었다가 6시에 잠에서 깼다. 파도소리가 텐트밖에서 들린다. 텐트밖으로 얼굴을 내미니 아침의 옅은 안개속에 바다물이 바로 앞에서 출렁거리는 것이 보인다. 주변을 보니 텐트들이 제법 많이 세워져 있다. 명절에 특별히 찾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도 많은 모양이다. 오늘은 부진런히 돌아보고 저녁에는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 가져온 술과 과일로 가볍게 상을 차린후 조상들에게 절을 올렸다. 그리곤 간단히 요기를 한 후 텐트를 거두었다. 밤새 돌아다녔는데도 긴장이 되어서인지 그리 피곤하지는 않다. 그때 해수욕장 관리자처럼 보이는 60대 아저씨 한분이 해변을 돌아보다 진흙들이 여기저기 붙어있는 내 오토바이를 보고 빨리 물로 세차하는 것이 좋다고 말해주었다. 이곳의 땅은 모두 소금기가 있어서 그냥두면 녹이 쉽게 나서 오토바이가 곧 망가져 버린다는 것이다. 곧 야영장의 세면장 옆으로 끌고가 20분동안 물을 뿌리고 닦았다.

 

   오늘 계획은 대부도, 선재도, 영흥도의 주요 갯벌들을 돌아보는 것이다. 서둘러야 한다. 아침 7시 정도에 만조였으니 10시정도부터는 갯벌이 어느정도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때부터 물이 다 빠져나가는 때가 가장 피크가 된다. 오후에 물이 다시 차오르면 이미 상황은 종료다. 어제 밤에 왔던 도로로 주변을 이곳저곳 구경하면서 영흥대교, 선재대교를 다시 건너 대부도의 칼국수집으로 향했다. 밤에는 조용하고 한적하게 보였는데 낮에 보니 생각보다 어수선하다. 여기저기 도로변의 숙박업소나 식당들이 생각보다 많다. 선재대교 위에서 보니 조개를 캐거나 망둥어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멀리 보인다. 대부도로 들어서니 국도주변에 포도밭들과 여기저기 포도를 판다는 현수막과 길가의 천막들이 여기저기에 보인다. 시속 40km정도로 주변을 구경하며 서두르지 않고 달렸다. 오전이라 도로는 아직 한적하다.

 

* 대부도로 가는 중 재미있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사이렌 소리와 더불어 한눈에 리터급(1000cc이상) 이상인 바이크를 탄 몇 라이더들이 대부도에서 영흥도로 가는 도로 위를 고속으로 달려오며 자동차들을 추월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동차운전자들은 무척 불안했던 모양이다. 2차선에서 몇대가 연속으로 추월을 하고 또 몇대는 추월하려고 자동차뒤에 바싹 붙어서 추월할 기회만 보니 자동차운전자들이 쩔쩔매며 어찌할 줄 모르는 모습이 확연히 보인다. 결국 한 택시기사는 차를 세우고 손으로 먼저 지나가라고 손짓을 한다. 이런 모습은 종종 보이는데 자동차운전자들이 라이더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라이더들의 운전이 거칠기에 행여 사고로 사람이 다치거나 비싼 바이크들이 부서져 재수없이 비싼 대가를 치룰까봐 피하려는 인상이 강하게 보여 좀 씁씁한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일반 사람들은 단체 라이더들을 떼로 몰려 다니는 도로의 무법자요 양아치로밖에 보지 않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에도 라이더들부터 달라져야 할 부분이 많다.

 

   국밥으로 식사를 마친후 복장을 간단하게 갈아입었다. 갯벌용 장화로 갈아신고 카메라만 챙긴후 야영장비들은 모두 식당에 맡겼다. 새들백에는 간단한 간식거리만 넣어두었다. 다시 선재도로 달려간다. 10시정도 선재대교에 다다르니 이미 물이 많이 빠지고 있다. 다리위에 바이크를 잠시 세우고 여기저기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조금 불안하다. 차량들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옆을 스치고 지나간다. 나는 먼곳에서 차량들이 미리 주의하도록 반사용 X반도를 벗어서 바이크뒤에 매어 두었다. 요것 참 요긴하게 사용한다.

 

   선재대교 양편을 돌아보고 뻘로 들어가 여기저기 다니다보니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지체 되었다. 뻘이 단단한 편이라 접근은 쉽지만 그리 감동을 주는 뻘은 아니다. 한낮의 태양빛이 내리쬐니 무척 더웠다. 선재도의 마을 공동양식장은 들어가지 못하였다. 공휴일이라 많은 관광객들이 와 있기에 내가 들어가게 되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 들어가게 된다며 마을 어촌계장이 한사코 허락하지 않는다. 막무가내로 사람들이 바지락이며 해산물을 채취해 간다는 것이다. 관광객들 때문에 선재도 인심이 아주 사나워졌다고 마을 주민들이 내게 말한다. 사실 근래에 선재도는 인심 사납기로 아주 유명해졌다. 커다란 대부도와 영흥도 사이에 끼여있는 이 조용했던 작은 섬이 관광지화 되면서 완전히 변해 버린 것이다.

 

   오후에는 영흥도로 넘어갔다. 이미 밀물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한다. 차량들도 계속 꼬리를 물고 들어온다. 추석을 지내고 수도권에서 바람쐬러 오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은 모양이다. 저녁때 서울로 돌아갈 일이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장경리해수욕장쪽으로 갔다. 추석제사를 지내고 많은 사람들이 놀러와 있었다. 주로 고기를 구어먹거나 일부 사람들은 망둥어를 잡아 매운탕을 끓이고 있었다. 바이크를 한쪽 구석으로 몰고 가서 세워놓았다. 피로가 조금 밀려온다.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하고 한쪽의 모래백사장위에 누웠다. .......

 

   나가는 길에 용담리해수욕장을 들렸다. 그리 넓지 않은 해변가에 숙박업소며 식당들이 몰려있고 사람들도 제법 많다. 바다건너편으로 선재도와 대부도가 마주보였다. 한 바퀴 돌아본 후 대부로가는 길로 다시 나왔다. 오후에 영흥도에서 대부도로 나가는 길은 무척 붐볐다. 특히 대부도의 길은 주차장을 방불케했다. 오늘 따라 길가의 포도가 더 눈에 들어온다. 한 포도파는 천막에 잠시 들렀다. 아주머니 커다란 송이 두 개를 가져다 주신다. 계산을 하려하니 두송이에 무슨 계산이냐며 오히려 비닐봉지에 커다란 송이 몇 개를 넣어 건네준다. 건너편 선재도나 영흥도의 관광지와는 사뭇 다른 인심에 놀랐다. 안타깝게도 올해는 포도농사가 흉년이었다. 일조량이 적었기 때문에 맛도 예년에 비해 좋지 않다한다.

 

   짐을 맡겨둔 대부도 칼국수집에 돌아온 것은 오후 5시경. 이미 대로는 완전 주차장이다. 나가는길, 들어오는 길 모두 꽉차서 거의 걸어가는 속도로 움직인다. 나는 갓길로 비상등을 깜빡이며 계속 달렸기에 별 문제없이 칼국수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때 서편 하늘이 붉게 타오르는 것이 보였다. 일몰이다. 나는 급히 바이트를 몰고 구봉도 방향으로 다시 달려나갔다. 도로공사중이라 여기저기 흙탕물 구덩이가 패여있었다. 차량들이 분주하고 오고간다. 구봉도에 도착하니 붉었던 일몰이 거의 사그라들고 있었다. 약간 늦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그런지 커다란 상가가 자라잡고 있었고 그 앞의 주차장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일출을 보거나 낚시를 하고 있었다. 다시 바이크를 돌렸다. 길위는 온통 주차장으로 차들이 거의 움직이지를 못한다. 이 고생을 하러 왜들 들어오는지... 사실 내가 보기에 이곳은 그리 볼 만한 곳이 많은 지역도 아니다. 하지만 대도시의 찌든 일상에 지내던 사람들에게는 이곳도 좋은 휴양지인가보다. 수도권지역의 서민들이 가족단위로 많이 오는 것 같다. 이미 많이 파괴되고 오염된 이곳에서 아이들은 그래도 바다라며 즐겁게 뛰어놀고 어른들은 잘 나오지도 않는 망둥어를 잡기위해 긴시간을 기다린다. 관광지개발은 어쩔 수 없었다하더라도 적어도 바닷가와 맞닿아있는 해변주위만은 모두를 위해 잘 보전되어져야 했다. 문득 저 좋은 바닷가를 파괴시킨 모텔주인, 음식점주인과 모종의 거래를 통해 허가될 수 없는 곳에 건축허가를 내주었을 담당공무원들이 떠오른다. 그들은 진정 서민들의 꿈을 뺏어 배를 채우고 사는 사람들이다. 하긴 이나라에 그런 인간들이 어디 그들뿐이랴.

 

   큰길로 들어서기 위해 대기하던중 난 눈앞에서 사고를 목격하게 되었다. 나가는 대부도에서 선재도로 갈라지는 길 부근에서 차들이 도로위에 거의 정지되어 있는 상황에서 갈래길에서 도로로 진입해 선재도로 가려는 차 한 대가 차량들 틈으로 들어가 선재도방향 차선으로 머리를 살짝 내밀고 있었는데, 선재도방향으로 들어오다 정지해 있던 차 하나가 틈이 좀 나자 순간적으로 속도를 내었는데 밤이라 차량의 머리가 튀어나와있는 것을 보지 못한 모양이다. '끼익'하는 급브레이크소리, '쾅'소리와 함께 차량 찌그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주 빠른 가속은 아니었고 브레이크까지 밟았는데도 꽤 큰 소리가 들렸다. 왜 그 좁은 공간속에서 가속을 급히 하는지... 그냥 지나쳐 왔기에 사람이 다쳤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운전석 반대편 앞문쪽과 충돌했기에 운전석옆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면 틀림없이 다쳤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사고란 이런거구나 생각하니 기분이 오싹하다. 차량이 정지에서 가속 그리고 충돌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2-3초에 불과했다. 차량 문짝이 저렇게 찌그러진다면 만일 사람이 외부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바이크를 들이 받았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칼국수집으로 돌아와 사고이야기를 하자 칼국수집아주머니와 서빙일하러온 러시아아줌마가 사고날까 두려우니 내일 날이 밝으면 가는 것이 좋겠다며 말린다. 나도 직접 사고를 눈앞에서 목격하니 웬지 밤에 서울로 올라가는 것이 자신이 없어진다. 술마신 운전자들도 많을텐데... 결국 그 식당에서 칼국수집 아줌마 아들과 사위와 셋이서 술을 자정까지 기분좋게 마시고 난 식당 근처의 천막아래에 텐트를 치고 잠이 들었다. 날씨는 선선하고 춥지는 않았다.

 

 

9월 12일

 

   6시에 텐트에서 일어나보니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다행히 천막안에 텐트를 쳤기 때문에 텐트며 장비들이 조금도 젖지 았았다. 급히 집을 싸고 칼국수집으로 가니 식당 아주머니가 고맙게도 바이크를 비닐로 덮어놓았다. 설렁탕을 먹은후 인사를 나누고 서울로 출발했다. 아침녁의 푸른 빛속에 시화방조제 양옆의 바다가 고요하게 펼쳐져 있었다. 비가 와서 길이 미끄럽다. 40km정도의 정속으로 움직였다. 어제 그렇게 많았던 차들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밝게 날도 밝았고 한번 왔던 길이기에 돌아가는 길은 더 자신이 있었다. 문득 강화도에 들려서 가고 싶은 욕심이 난다. 그러나 날씨가 문제다. 비는 계속 내리고 우의를 입었지만 흘러내리는 빗물로 신발은 이미 젖었고 추위가 조금씩 파고 들어온다. 아쉽지만 곧장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시화방조제를 건너 오이도의 횟집들이 즐비한 해안가를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니 곧 소래포구가 보였다. 예전에 비해 너무 많이 변했다. 12년전에 왔을 때는 정말 조용한 시골 포구였다. 소래대교를 건너 부천쪽으로 이동하기전에 잠시 들려보기로 하고 다리를 건너자마자 다리아래로 통하는 길로 빠져나와 소래포구에 들렀다.

 

   소래포구는 너무나 많이 변해 있었다. 그냥 보통의 관광지처럼 술집, 식당이 가득 들어서 있다.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니 해산물 가격이 그리 싼 것 같지도 않고 그냥 보통 도시의 상가분위기다. 한 바퀴 돌아 본 후 나는 남동공단쪽으로 넘어가 보았다. 비가 아직도 부슬부슬 내린다. 고개를 넘어 논현동이란 곳에 들어섰다. 그런데 마을이 철거되는 분위기다. 재개발지역임이 분명했다. 마을 안쪽으로 가보니 그래도 주민들이 살고 있다. 보상문제로 시끄러운 듯 보였다. 하지만 마을의 분위기를 보니 예전의 가난하지만 정겹게 살던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마을의 마지막 모습이라도 기록해두고 싶지만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몸이 조금씩 추워오니 마음이 많이 위축된다. 다음에 다시 꼭 돌아오마 생각하며 소래방향으로 다시 바이크를 돌렸다. 나는 10월에 결국 그곳을 다시 찾게 되었다.

 

   서울로 가는 길은 쉬웠다. 소래옆을 지나는 50번 고속국도로 들어서서 계속 달려가다 서울을 가르키는 표지판만 계속 따라가다 보니 부천에 도착했다. 어느 지역에서 어떻게 방향을 바꾸었는지는 아직 도로감각이 없던 때라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런데 주행중에 자꾸 무언가 타는 냄새가 났다. 엔진은 별 무리없이 돌아가는데 자꾸 타는 냄새가 나니 불안해 졌다. 과열이라 그런가 싶어 난 부천에서 바이크를 세워놓고 한 PC방에 들어가 메일확인을 하며 잠시 시간을 보냈다. 나와보니 비가 더 많이 내리기 시작한다. 타는 냄새는 계속 난다. 다시 세워 놓고 엔진을 식히는 도중에 산악사진작가인 박종훈님의 전화가 왔다. 걱정이 대단하시다. 사고날까 두려우니 어디에 맡겨놓고 다른 차를 타고 가라 하신다. 명절 때문에 장거리 여정에서 막 돌아오신 분이 당장 분당에서 달려나올 분위기다. 천천히 가면 상관없다고 안심을 시켜드린후 다시 달렸다. 나를 이렇게 걱정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정말 기분좋은 일이다. 서울방향으로 가다보니 역곡근방이 나왔다. 지도를 보고 난 신도림쪽으로 가기로 했다. 그러나 가다보니 도로표지판에 표기되어 있던 역곡이 나오지 않고 다른 표시가 보인다. 망할 놈들... 할 수 없이 그냥 계속 달렸다. 도로표지판을 100% 믿을 수가 없다. 어떤 터널 하나를 넘어 넓은 길로 계속 달리다보니 목동이 나왔다. 신도림동으로 가서 오토바이수리센타를 찾으려던 계획을 이제 수정해야겠다. 바이크가 고장난 것은 아니니...

 

   서울 시내는 평소보다 복잡하지는 않았다. 달리다보니 양화대교가 나왔고 시청표시를 따라 계속 달리다보니 신촌이 나온다. 이제 다 왔구나 싶었다. 신촌로타리에서 연대앞으로 돌아 금화터널을 통과하는데 비가 억수처럼 쏟아 붇는다. 앞이 안보일 지경이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다. 시속 40km정도로 비상등을 켜고 가장자리차선에 붙어서 움직였다. 저속상태라 그런지 미끄러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엔진과열은 전혀 문제가 없다. 이렇게 비가 내리니 떨어지는 물, 도로에서 튀어오르는 물에 엔진은 완전 수냉식겸용으로 변해 버린 것 같다. 혜화동 로타리를 돌아 집으로 가는 골목에 들어서니 이제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짐을 풀어 들여놓고 우의를 벗으니 속은 그래도 젖지 않았는데 목주변과 발목주변은 완전히 젖어 버렸다. 2박3일 동안의 바이크투어가 빗속에서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총주행거리 400km였다.

 

 - 1차 투어 : 대부도 바이크 투어기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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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Hwayong, Kim     khy906@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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