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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와의 6개월간의 동거  

 

 

   이제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과거에 한 고양이와 나 사이에 있었던 6개월간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써보고자 한다. 사실 이런 글 쓸 정신적 여유는 없지만 요즘 세월이 지나서 그런지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당시의 사소한 일들에 대해서는 기억이 조금은 가물가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좀 더 생생한 기억을 가지고 있을 때 적어두기로 한 것이다.

 

   보통 우리는 성질 고약한 여자를 고양이에 비유한다. 그래서 나는 그녀라는 말을 썼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이 고양이는 그녀가 아니다. 수컷이기 때문이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는데, 대답은 너무 간단하다. 나는 녀석의 다리 사이에 있는 두개의 방울을 쉽게 볼 수 있었으니까. 나의 성을 확인하는 데 있어서는 녀석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녀석은 화장실까지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게다가 녀석은 눈도 나보다 훨씬 좋지 않은가. 이 영리한 고양이놈이 나의 다리사이에 있는 그것이 자기것과 같은 기능을 하리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을 것이다. 나와 그 녀석은 서로가 외로운 수컷임을 분명 잘 알고 있었다.

 

   그해에는 유난히 고양이와의 인연이 많았던 것 같다. 그해 봄에 나는 동네 앞에서 차에 치어 참혹하게 죽은 고양이 한 마리를 뒷산에 묻어주었다. 꼬마 아이들이 구경하러 자꾸 몰려드는데 별로 교육상 좋을 것 같지도 않고 무엇보다 죽은 고양이의 입장에서 무척이나 괴로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긴 죽은 고양이가 무엇을 알랴만...


   여름에는 또 이런 일이 있었다. 저녁에 신림동 한 동네의 계단을 오르다, 동네 아줌마들 지나가는 청년들 할 것 없이 사람들 다 모여서 ‘저걸 어쩌나! 저걸 어쩌나!’ 하는데, 궁금해서 가서보니 담위에 어느 신경통환자가 놓은 덧에 걸린 고양이가 몸통이 조여져 고통스러워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고양이가 닥치는 대로 할퀴고 물려고 난리였으니 아무도 가까이 가지는 못하는 것이었다. 결국 구원의 사도인 내가 나서서 옷을 벗어 고양이의 눈을 가리고(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본대로, 근데 그것은 악어였든가? 아무튼...) 몸통에 걸린 철사줄을 풀어주긴 했지만 이 서투른 내셔널지오그래픽 모방자는 겁에 질린 고양이한테 얼굴을 두 번이나 물리고야 말았다. 광견병이 두려워 즉시 병원 응급실로 달려가면서 그때 문득 떠오른 것은? ‘이제 앞으로는 남이 죽건 말건 절대 신경쓰지 말자. --;’ 그 당시 경기 북부지역에 광견병이 유행이었고 연일 뉴스에서도 애완동물들 관리주의하고 접종시키라고 부산을 떨던 때였다. 다음날 관악보건소에 전화를 걸어 광견병 예방주사를 맞을 수 있냐고 하니 대뜸 담당공무원이 하는 말이 "사람한테는 공수병이라고 하고 동물한테는 광견병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아니 이런 미친 여자를 보았나! 당장 급해 죽겠는데 국어교육부터 시키려고 하네. 그렇다면 광견병이 맞아. 나 동물이거든. 결국 예방백신도 없으면서 엉뚱한 소리나 하는 도움도 안되는 구보건소 담당과의 전화를 끊고 광견병 예방백신이 있다는 불광동 국립보건원의 한 담당연구원과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 가면 주사를 맞을 수 있는데 몇 달에 걸쳐서 여러번 맞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나 놀라운 말을 들었는데, 만일 감염이 되었다면 물린 부위가 중요한데 하루에 2.5cm씩 뇌쪽으로 올라간대나? 그렇다면 나는 턱 아래 부위니까 만일 그 고양이가 감염되어 있었다면 얼굴크기 대충 재보고 2.5cm로 나누어 보니 며칠 안 남았네? 나는 그냥 있기로 했다. 그리고 하루에 한번씩 거울을 보았다. 입에서 침이 흘러내리는지, 균이 어디까지 올라갔는지 궁금해 하며. 다행히 감염이 안됐는지 아니면 머리가 커서 시간이 더 걸리는 탓인지, 뇌가 없는 탓인지 몇 달이 지나도 아무 변화도 없었고 나는 곧 그 일을 잊고 말았다.  


   그럼 다시 돌아와서 그해 고양이와의 세 번째 사건이자 내 이야기의 주인공인 이 누런 수고양이놈과의 인연이 어떻게 된 것이었는지 말하겠다. 어느 여름날 저녁 나는 저녁을 먹고 난 후, 부엌에서 자꾸 부스럭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방문을 열어보았다. 순간 나는 중간정도 크기의 고양이 한 마리, 관절염과 신경통에 가장 좋다는, 그중에서도 가장 약효가 뛰어나다는 누런 고양이 한 마리가 잽싸게 도망가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저녁 먹고 난 후 그릇에 남아있던 뼈다귀를 먹으러 온 모양이었다. 나는 이 망할 고양이를 혼내줄까 하다가 오죽하면 부엌까지 들어왔을까 싶어 아예 편하게 먹으라고 그릇에 찌꺼기를 담아 문밖에 내 놓아 버렸다. 아침에 보니 그릇은 아주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무척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당시 내가 살던 봉천동은 달동네까지는 아니었지만 단층내지 1, 2층의 옛날식 건물들이 많아 많은 고양이들이 집주변에 살고 있었다. 아마 이들 사이의 생존경쟁도 치열했을 것이다.


   하루가 가고 그날 저녁 나는 또다시 방문자의 방문을 받게 되었다. 그날은 이 녀석은 좀더 대담하게 부엌에 접근해서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약간 호의적이었던 것을 눈치챈 것 같았다. 나는 당시 울릉도에서 몇 마리 사왔던 오징어의 다리를 잘라 던져 주었고 그녀석은 그것을 물고 다시 잽싸게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이렇게 하루 이틀이 지난후 나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녀석을 다시 만났는데 담위에 있는 녀석의 목에 비닐 끈이 숨도 못쉴 정도로 단단히 매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순간 이 녀석이 어느 신경통환자가 놓은 덫에 걸렸다가 가까스로 빠져 나온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끈은 녀석의 목을 자를 정도로 단단히 조여져 있었다. 나는 끈을 풀어주고 싶었지만 녀석은 무척 그 끈에 예민해 했다. 손을 대려하자 곧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또 놈의 방문을 받았다. 이제 놈은 나를 어느정도 믿는 것 같았다. 오징어를 물고 도망가던 녀석은 나중에는 문앞에서, 그 다음에는 방안에서 이렇게 1m씩 다가와 드디어는 바로 내 앞에서 두려움없이 오징어를 먹게 되었다. 나는 기회를 봐서 녀석의 목을 파고들고 있는 그 올가미를 풀어주기로 하였다. 너무 단단해서 손으로 풀기는 어려웠고 녀석이 도망가기 전에 신속하게 자를 칼이나 다른 도구가 필요했다. 나는 살며시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녀석은 이제 나의 손길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목의 끈에 손이 닿으면 예민해져서 도망가 버리곤 했다. 나는 꾀를 내었다.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다른 손으로 손톱깍기를 이용해 녀석이 눈치 못 채도록 비닐끈을 조금씩 잘랐다. 어느 순간 녀석의 숨을 조이던 끈이 떨어져 나갔고 녀석은 그제서야 무슨 일이 생긴 것을 눈치채고는 도망가려하다가 눈앞에 떨어진 끈을 보고 그것의 냄새를 맡아보고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일 이후로 녀석은 나를 완전히 믿게 된 것 같았다. 그리고는 하루도 빼 놓지 않고 나를 찾아왔다. 며칠이 지나자 오징어가 바닥이 났고 나는 내가 마시던 우유를 주거나 슈퍼에서 가장 싼 꽁치통조림을 사다 조금씩 주곤 했다. 당시 꽁치통조림은 한통에 800원이었다. 이 것 한통이면 나는 녀석에게 며칠동안 인심을 후하게 베풀 수 있었다. 그러자 이제 녀석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으레 냉장고 앞에서 자기 것 내놓으라는 듯이 야옹하며 나를 부르곤 했다. 그리고 녀석은 꽁치를 먹은 후에는 꼭 내 옆에 와서 마치 굉장히 다정한 사이인 것 마냥 내 다리에 머리를 비비거나 의젓하게 내 옆에 앉아서 내가 바라보는 곳을 같이 바라보곤 하였다. 마치 내 마음을 다 이해한다는 듯이. 그리고 이런 관계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날부터인가 나는 이 얼굴 삭막한 고양이놈이 나를 날마다 찾아오는 이유가 참으로 궁금해졌다. 내가 좋아서? 내가 제공하는 꽁치 특식맛을 못 잊어서? 내 얼굴도 만만치 않게 삭막해서 그런가? 나는 그 이유를 알아보기로 하였다. 그래서 나는 어느날 며칠동안 고양이에게 제공했던 급식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아마도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나를 찾았다면 이 놈은 이제 이곳을 찾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그날도 그놈은 여느 때처럼 냉장고 앞에서 나를 불렀다. 나는 모른척했다. 몇 번 더 부르더니 이놈은 그냥 포기한 듯 내게로 와서 몸을 비벼댔다. 한 일주일쯤 되었을까? 녀석의 급식은 전면 중단되었지만 그래도 이녀석은 날마다 나를 찾아왔다. 나는 일주일이 지난 다음 이 이상한 놈에게 다시 특식을 주기로 했다. 먹이 때문에 나를 찾아온 것이 아닌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아니면 녀석의 고단수 인내력 술수에 내가 넘어간 것인지도.   


   이놈의 방문은 한달 가까이 계속되었다. 내가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지냈기 때문에 날렵한 고양이족속인 이놈이 나의 방에 들어오는 것은 너무도 쉬웠다. 담너머 집에서 담하나만 넘어서 대문위를 타고 오면 일층의 내 방 문앞으로 금방 도달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던 어느날 아침 나는 잠에서 깨어서 무엇인가 다른 감촉에 깜짝 놀랐다. 이 고양이놈이 내 옆에 바싹 붙어서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원래 동물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나는 크게 이놈을 나무라지는 않았다. 그러자 그 다음날에도 또 그 다음날에도 나는 아침마다 눈을 뜨면 내 옆에 붙어서 잠들어 있는 누렁이 한 놈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이놈은 지금 사람으로 치면 완전히 보따리 싸들고 들어왔던 것이다. 사태를 깨달은 나는 좀 어이가 없었다. 이놈 어디가 잘못된 놈 아니야? 참나....


   나는 사실 수컷들에 질린 사람이다. .... 초등학교 때를 빼면, 중학교, 고등학교, 군대, 대학교, 어디나 내가 가는 곳은 여자들이 없었다. 내 소원이 여자들이 많은 곳에서 한번 지내보는 것이었다. 군대생활도 연천의 최전방에서 보냈다. 일년내내 여자 한 명 보기 어려웠고 정말 전방 1km 밖에서 빨간색만 보여도 하루종일 흥분이 가라앉지 않을 정도였다. 그 곳에서 우리 소대는 부대 짠밥을 가지러 오는 민통선내 마을이장 아저씨와 모종의 거래를 맺었었는데 아저씨가 품에서 빨간비디오테잎을 한 장 꺼내주면 우리소대 쫄병들은 보리를 한 가마니 씩 짠밥경운기에 실어주곤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이면 나는 쫄병들에게 밤새 생긴 화장실벽의 자국들을 당장 지우라고 호통을 치곤 했다(그러던 나는? 당시 대한민국 오대장성중의 하나였던 병장). 제대후 나는 포르노를 본 적이 없다. 국산남녀분들것을 포함한 다국적 제품들... 내가 마스터한 것이 어디 한둘이던가! 이런 나인데 이제 이 누런 숫코양이놈까지 달라붙어? 암컷이라면 좀 몰라. 혹시 알아, 영화 나자리노처럼 ㅎㅎㅎ  .....?  어렸을 때 개를 껴안고 잔 적도 많기 때문에 고양이는 처음이었지만 나는 이것마저도 신경쓰지 않고 두기로 했다. 내가 성격이 너무 좋은 건지, 너무 더럽게 사는 건지?  이놈은 저녁이면 10시경 나갔다가 들어오는데 들어오는 시간은 나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내가 잠들었을 때 들어오니까. 새벽에 들어와서 놈은 내 옆에 붙어서 그냥 자거나 아니면 내 위로 올라와서 발을 굴러 나를 깨우고는 냉장고 앞에서 나를 부르곤 했다. 고양이한테 귀가시간 지키라고 교육시킬 수도 없고, 또 고양이놈들은 생활패턴이 인간과 다를 테니 내 시간에 맞추라고 할 수도 없고. 또 이놈은 사내놈 아닌가? 밤새 돌아 다녀도 별일(?) 있을 리도 없을 테고. 아무튼 이놈과의 이상한 동거관계는 이렇게 하루 이틀 흘러갔다. 

 

 

   그리고 결국 이 동거자의 정체는 동거생활 일주일만에야 밝혀졌다. 하루는 자취방에 돌아오는데 한달동안 안보이던 앞집 아주머니가 그 고양이와 같이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 아주머니와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고 그 고양이가 앞집에서 새끼때부터 키우던 집고양이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번은 멀리 차로 한시간거리 되는 곳에 고양이를 주었는데, 목의 사슬을 풀고 집으로 기어이 돌아온 적도 있었고, 이후로 고양이를 다른 곳에 줄 생각은 버렸다는 말도 들었다. 사연인즉 아주머니가 한달동안 미국에 가 있는동안 이 앞집의 배고픈 고양이가 내 부엌을 찾게 되었고 그렇게 되서 서로 눈이 맞아(?) 지금 이렇게 같이 지내게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놈이 이제 주인이 왔으면 그리 가야하는데 갈 생각은 안하고 아주 눌러 붙을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두집살림을 염두에 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놈은 내가 집에 없는 낮에는 앞집에서 밥도 먹고 앞집 마당에서 놀다가 저녁에 내가 돌아오면 신이나서 내게 달려오곤 했던 것이다. 이놈은 내 발자국 소리를 귀신처럼 알아서 문을 열자마자 어디에선지 나타나서 내방으로 따라 들어오곤 했다. 이후  이 고양이의 두집살림은 앞집이 이사를 가고 건물 신축을 위해 허물어질 때까지 약 네 달 동안 계속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놈과 살면서 고양이들에 대한 것들, 이놈들의 습성, 감정, 의사소통방식 같은 것들을 조금씩조금씩 알게 되었다. 제일 먼저 알게 된 것은 이놈들의 언어였다. 알고 있겠지만 이놈들은 각기 다른 울음소리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이들의 의사소통은 훨씬 다양하였다. 더구나 고양이들은 우리가 전혀 듣지 못하는 소리로도 말하는 것 같았다. 또한 이놈들의 비슷해 보이는 외형도 실제로는 한 마리 한 마리가 많이 다른데, 우리 인간처럼 몸매, 목소리, 얼굴 다 달라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슷해 보이는 놈들도 쉽게 구별할 수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녀석의 얼굴과 몸의 특색은 물론이고 한 밤중에도 주변의 여러 고양이 울음소리 가운데서 이놈의 소리를 정확히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위의 사진은 물건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인데, 사진에서 보듯 녀석의 인상은 결코 장난이 아니다. 같은 고양이놈들도 이놈이 다가가면 멀찍이 도망가곤 했으니까. 다리에 감긴 붕대는 내가 감아준 것이다. 어느날 무엇엔가 얻어맞아 다리를 다쳐 왔었다. 지금도 심증이 가는 범인이 하나 있긴 있다. 바로 옆집 아저씨인데 나와 사소한 일로 싸움 직전까지 간 적이 있었고 바로 그 직후 고양이가 다쳤다. 덩치 크고 싸움 잘해 보이는 나보다는 나의 동거자가 만만했던 것 같다.     

 

   이놈은 내가 집에 있는 동안은 항상 내 옆에 붙어 있으려 하였다. 내 다리에 자기 얼굴을 비비곤 하였는데, TV에 나오는 동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일종의 소유의 표시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 그것은 비슷한 차원에서 친밀감의 표시나 유대감을 강화하는데에도 사용되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내가 앉아있으면 마치 굉장히 친한 놈처럼 내 다리위에 올라와 의젓하게 않아 있곤 하였다. 심지어 녀석은 옛날건축구조상 밖에 있던 화장실까지 나를 졸졸 따라다니곤 했는데, 내가 나올때까지 지붕에서 있거나 문 바로 앞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밤이 깊어지면 어디론가 사라지고 새벽에 다시 돌아오곤 하였다. 


   이놈을 통해 알게된 고양이라는 놈들은 그동안 내가 본 개들보다 훨씬 영리하고 독립심이 강했다. 녀석은 결코 누구에게 종속되기를 싫어했다. 세달에 한 번 있는 나의 방청소날, 나는 녀석을 거꾸로 들고 밖에 나가 빗자루로 먼지로 털었다. 그러자 지나가던 아이들이 물었다.

   “그 고양이 아저씨네 건가요?”

나는 무심코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일단 고양이의 주인이 앞집아줌마인 것을 떠나서 내가 고양이의 주인이었다 하더라도 내가 과연 이 고양이의 주인인가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사실 나와 그 고양이의 관계는 조금의 종속관계도 없었다. 녀석은 녀석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의 자유의사대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으며 서로 간섭 한 적도 없었다. 나는 고양이를 포함 모든 동물에 대해 애완동물이라는 말을 부정한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붙인 말이다. 사실은 같이 살아가는 것이다. 다른 동물들은 단지 주어진 환경에서 살 뿐이다. 그들은 인간을 자신의 주인이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당시 내가 살던 주변에는 많은 고양이들이 살고 있었다. 고양이 삼남매, 항상 일정 시간이 되면 영토순례를 나서던 커다란 흑고양이, 고양이엄마, 또 다른 암고양이, 밤에만 나타나던 형체를 본 적이 없던 고양이들.... 이놈들이 당시 그곳에서 살게된 사연에 대해서는 내가 전혀 알 수가 없었지만, 이놈들은 모두 내가 살던 집 주변을 생활 무대로 보이지 않는 영토 전쟁을 벌이며 갈등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집 몇 채 건너편에는 또다른 무수한 고양이들이 있었고 그들은 자기의 경계구역을 지키며 또다른 세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자기의 구역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자기의 구역을 벗어나지 않으려 했고 자기의 구역을 철저히 지키는 것처럼 보였다. 야옹군도 나를 따라 오다가도 일정한 지역에 오면 처량한 소리만 지를 뿐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그 구역을 넘는 것은 그들 사이의 전쟁을 의미했다. 이들간의 관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얽혀있는지는 인간인 나로서는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그들만의 단순하지만은 않은 어떤 관계가 존재했던 것은 분명했다. 다른 고양이들, 특히 삼남매는 내가 이 누렁이와 같이 있는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기우뚱거리며 이상하게 바라보곤 하였는데, 그 도둑고양이들에게는 자기 종족이 자기들을 미워하고 좇아내는 인간과 다정하게 있는 모습이 이해되기 어려웠던 것 같다.   


   흔히 사람들은 동물들은 오로지 본능만이 있고 인간이 가진 이성이나 복잡한 감정들은 없거나 있더라도 아주 단순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고양이를 통해서 봤을 때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들에게도 우리 인간이 가진 애정과 노여움 기쁨과 슬픔 모든 것이 다 있으며 그 것들은 우리 인간의 것과 비교해 결코 단순하지 않다. 나도 나이를 먹어가며 적지 않은 좋은 일들과 나쁜 일들을 경험해 왔는데, 특히 동물들에 대해서도 내가 단순하게 들어왔던 것과는 다른 면을 가끔 보게 되었다. 자기 짝이 쥐약을 먹고 죽자 그 아픔에 밥도 안먹고 울다가 결국 굶어 죽어버린 고양이, 평소에 자기를 괴롭히던 덩치 큰 닭이 죽자 슬피 울면서 주위를 맴돌며 죽은 닭을 깨우려했던 병아리 등등 ..... 이런 것들은 내가 알고 있던 본능적으로 살아가는 동물의 행동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시골집에 있을 적에 한번은 개를 데리고 들에 나간 적이 있었는데, 개가 무엇을 잘못 먹었는지 그냥 끙끙대며 잘 걷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나는 할 수 없이 근처에 있었던 과수원집에서 먹일 약이라도 찾아보려고 개를 남겨두고 가려했다. 그러자 움직이지 못하던 개는 죽을 힘을 다해 내게 달려들었고 내 다리를 껴안았고 손을 내밀자 내 팔을 껴안았다. 영화에서 보듯 물고 늘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는 지금도 이해를 잘 못한다. 옷을 물면 더 효과적일텐데 왜 다리로 껴안는 그 불편한 방법을 택했는지. 그러나 지금도 분명히 기억한다. 그 개는 죽음의 순간에 혼자 남겨지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지를 말로 못하고 눈빛으로 분명히 내게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할 수 없이 그 큰 개를 껴안고 당시 형이 살던 과수원집까지 갔다. 다행히 죽을 줄 알았던 개는 겨우 살아났다. 나는 이후 군에 입대했고 내가 첫 휴가를 나온 날 녀석은 나만 보이면 쉬지 않고 꼬리를 치며 끙끙거렸다. 군대에서 반강제적으로 쓰는 어버이날 편지에 엄마한테 그개는 절대 팔지 말라고 썼었는데, 무심한 우리 엄마는 내가 제대하기 전에 팔아 버리셨다. 내가 어릴 적부터 우리집을 거쳐간 개들은 수십마리, 모두 누렁이 똥개들이었는데 아주 순했고 이름도 모두 '메리'였다. 그중에서 몇마리는 복날 우리식구가 먹어 버렸었다. 나는 가끔 그 개들이 보고싶어질 때가 있다. 그리고 또 한번은 우이도에서 염소들의 싸움을 구경한 적이 있는데 두 수컷 염소가 싸우고 주변의 암염소들이 싸움을 말리는데, 이건 분명히 인간 사회생활에서 보는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싸움구경하다 지쳐서 그냥 와야했다. 도대체 몇시간이 지나도 끝이나질 않으니. 정말 염소들의 고집이란.....


   나는 가끔 생각했다. 인간은 정말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인가? 언어나 기타 복잡한 정신적 능력을 요하는 것은 오로지 우리 인간들만의 전유물인가? 나는 그 고양이와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질리도록 들어온 그러한 판에 박은 말들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다른 생물들과의 공존을 거부하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다른 생물들도 공유할 권리가 있는 대자연을 무자비하게 파괴해온 오만한 인간의 잔인함과 이기심에 대한 자기합리화인지도 모른다. 이 우연하게 만들어진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서 우리 인간은 어쩌면 정말 신이 만든 창조물중의 하나인지도 모르고 오랜 진화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모두 언젠가는 사라져갈 운명일 것이며 또는 그것이 아니고 우리의 소멸은 또 다른 세계의 시작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때로 우리가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 눈과 귀를 열 필요가 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다른 생물들을 이해한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우리의 근본생활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몇 명의 인명을 구하기 위해서 한 동물의 종을 말살해야하는 결정을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일을 하더라도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는 것, 그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고 비록 결과는 같을지라도 근본적으로 아주 다른 것이다.



   학습은 모든 생명체에게 정말 중요한 것 같다. 특히 이 고양이에게 교육의 효과는 나의 상상을 초월하였다. 한번은 자고 일어났더니 이불위에 완전 인수분해된 생선의 머리뼈가 흩어져 있었다. 나는 화가나 이놈의 목을 잡고 그 뼈앞으로 끌고 가서 두세차례의 강제 헤딩을 시킨 다음에 소리쳤다.

  “야 임마, 내가 이불 한번 사면 버릴 때까지 빨래 안하는 것 알아 몰라?”

교육의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이후로 그놈은 한번도 생선을 물고 들어오지 않았다. 또 한번은 이놈이 어디서 쓰레기통을 뒤지고 왔는지 생선냄새를 풀풀 풍기고 왔길래 나는 냄새를 맡고 냄새가 남다고 투덜거렸다. 녀석은 그날은 내게서 저만치 떨어져서 몇 시간동안 혀로 털청소만 하면서 가까이 오지 않았다.


   혹시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생가죽걸레로 방청소를 해보신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온갖 고급걸레를 다 써본 집도 있겠지만 살아있는 생가죽걸레로 청소를 해본 적은 없을 것이다. 비오는 날이었다. 이날 이놈은 어디 있다가 나타났는지 문을 밀어열고 어슬렁거리며 들어왔다. 순간 나는 방바닥에 무언가 빛나는 표시들을 보았다. 녀석이 지나간 길을 따라 나있는 흙발자국. 이놈들은 신발을 신지 않는다. 가르쳐서 될 일도 아니다. 이걸 어떻게 한다? 두세달에 한번 정도 할까말까한 방청소, 이제 청소한 지 한달밖에 안됐는데. 순간 나는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나는 두손으로 놈의 앞 뒷다리를 각각잡고 방바닥에 눕혀놓았다. 그리고는  팔을 밀었다 당겼다를 시작했다. 물론 녀석의 더러운 발자국을 따라서... 결과는 놀라왔다. 빛나는 방바닥. 내방이 이렇게 깨끗한 적이 있었든가? 비 맞은 생가죽털의 먼지흡입효과는 놀라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은 나를 멀뚱멀뚱 보면서 가만히 있었는데 나는 웃음이 막 나오는 것을 참으면서 한편으로 녀석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는 내가 좀 짓궂었다.         

 


   이놈과 나와의 사이에도 몇 번의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다. 그 중 이 사건이 가장 큰 것이었고 급기야는 이놈은 무단가출하였고 우리는 일주일 넘게 별거를 하기도 하였다. 이상할 것이다. 누가 바람 피웠을 리도 없고 피웠다하더라도 염색체수도 다른 두 수컷이 질투할 것도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 질투에 있어서는 이놈이 나보다 지독히 강했던 것 같다.


   고양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생존의 위기를 느끼며 살아간다. 이놈들이 주변 동물들을 닥치는대로 잡아먹어 생태계 교란의 한 주범으로 지목되는 데는 이런 원인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물론 고양이를 이런 존재로 만든 것은 바로 이기적이고 잔인한 우리 인간들이다. 많은 고양이들은 결국 버려지고 도둑고양이가 된다. 이놈들은 번식하는 속도도 매우 빠르고 많은 새끼를 낳는다. 그러나 이 새끼들 가운데 상당수는 굶어 죽고 일부는 다른 고양이에게 잡아먹히기도 한다. 한번은 밤새도록 지하실에서 새끼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 잠을 설쳤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지하실에서 네 마리의 새끼를 난 암고양이가 새끼들을 감당하기가 너무 어려웠던지 이놈을 의도적으로 버리고 간 것이었다. 이 암놈은 만일에 대비해 한두 마리라도 새끼를 살리려고 가장 건강한 새끼 한두 놈에게만 젖을 집중적으로 먹였다. 결과적으로 같이 태어난 새끼이지만 그 크기가 두배도 넘게 차이가 생겼고 마지막에는 가장 허약한 놈을 지하실에 떼어놓고 가버린 것이었다. 날마다 하도 시끄럽게 울어서 어느 날 나는 지하실로 내려가 배고픔에 지친 그 새끼놈을 잡아 방으로 데려다 우유를 먹였다. 그날 저녁 여느날처럼 나의 동거 고양이가 어슬렁거리며 들어왔는데, 냄새를 킁킁 맡더니 매우 노여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매우 불쾌한 표정에 불쾌한 소리를 계속 내더니 이놈은 화가 나서 방을 나가 버렸다. 나는 좀 놀랬다. 그놈의 질투가 이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건 좀 불공정했다. 나는 같은 수컷으로서 놈을 이해했기에 매일 우유와 꽁치통조림을 주면서 항상 “자 이거 먹고 나가서 동네 암코양이들 다 주물러 주고 와라” 이렇게 말하곤 했는데 말이다. 굶어 죽어가는 새끼놈 데려다 우유좀 주었기로서니 그것이 그리 불만스럽냐 말이다.


   이 질투심 강한 녀석은 이후로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밖에서 지나치더라도 내가 부르면 노여움을 나타내는 소리를 내며 가까이오지조차 않았다. 새끼고양이를 데려온 지 며칠 후 일요일날 나는 그 새끼고양이를 다시 앞마당에 데려다 놓았다. 그동안 우유와 참치통조림을 먹은 덕에 그 새끼고양이는 무척 활기있게 놀았다. 그러고 그날 나는 마당을 지나던 그 어미와 그 새끼고양이가 만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새끼는 어미를 보고 좋아서 미친 듯이 달라붙었는데도 어미는 냄새를 맡아보더니 죽지 않고 살아있는 새끼가 의아한 듯 바라보더니 다시 새끼를 떼어놓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다시 새끼의 엄마찾는 울음은 계속되고. 그리고 몇시간후 나는 다정하게 엄마와 걸어가고 있는 그 새끼고양이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달후쯤 그 새끼고양이는 결국 지하실에서 굶어죽은 채 발견되었다. 나의 역할은 단지 그 새끼고양이의 수명을 한달정도 연장시킨 것으로 끝나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골치아픈 녀석이 사라진 것을 속시원하다 생각하며 다시 예전처럼 조용한 생활로 돌아갔다. 이제 내 방에는 예전처럼 날마다 찾아오던 불청객도 없었고 그 손님을 위한 싸구려 꽁치통조림을 준비할 일도 없어졌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 참 이상한 것인지, 어딘가 허전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하지도 않은 채.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났다. 가끔 녀석과 마주쳤지만 녀석은 나의 근처를 배회를 하였지만 여전히 으르렁거리며 노여운 표정이었다. 나도 언제부터인가 신경을 쓰지 않는 척 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이었다. 화장실에가서 볼 일을 보고 있는데 나는 어디선가 나지막한 익숙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야옹군의 목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의 의미를 읽을 수 있었다. 이놈은 화장실 너머에서 내게 원망이 섞인 화해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화장실을 나와서 녀석을 불렀다. 녀석은 조금은 원망스러운 듯 조심스럽게 화장실 지붕을 타고 천천히 내게로 왔고 우리는 예전처럼 다정하게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의 열흘간의 별거는 그렇게 해서 끝이 났다. . 


  고양이도 운다. 때로 고통스러워서 때로 화가 나고 슬퍼서. 그리고 때로는 화풀이도 할 줄 안다. 나는 이녀석이 우는 것을 딱 한번 보았다. 그날은 왠지 내게 심술이 들어 있었나보다. 나는 녀석의 균형 감각을 테스트해 보기 위해 안보이는 자루에 놈을 넣고 팔을 돌려 빙빙 돌렸다. 고양이의 균형감각은 정말 뛰어났다. 시야가 가려진 자루속에 있으면서도 떨어질 것에 대비해 정확한 착지자세를 갖추곤 했다. 실험후 나는 자루를 풀었는데, 그 실험이 녀석을 무척 화나게 했었나보다. 고양이가 화났을 때 내는 특유의 소리를 내며 내게 불만을 표출하더니 내손을 할퀴었다. 나는 화도 나고 장난기가 더욱 도져서 버릇을 가르친다며 녀석에게 볼펜을 몇차례 던졌다. 놈은 그때마다 귀신처럼 피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놈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분명히 눈물이었다. 녀석은 울고 있었던 것이다. 불쌍하게도 울면서도 한쪽 눈은 날아오는 볼펜을 피하기 위해 교대로 뜨면서 정말 달기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더니 이내 밖으로 달아나 버렸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나는 정말 못됐다.

 

   그 장난 이전에도 나는 몇 번의 장난을 한 적이 있었다. 놈이 얼마나 착지를 잘 하는지 보려고 던져보거나 장난삼아 공중으로 던졌다 받는 동작을 취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리 고양이가 균형감각과 운동신경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그놈에게 매우 공포심을 심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양이들은 자신들이 감내할 수 있는 높이 위에서는 생각보다 강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어느정도 높이 이상의 건물에 고양이들이 살지 않는 이유인 것 같다. 한번은 그런 장난후 내려 놓았더니 녀석은 으앙거리면서 잽싸게 담너머 자기가 살던 집으로 넘어가버렸다. 그러더니 그집 마당에 있는 화분의 나무를 앞발로 막 차면서 화풀이를 하더니 계단위로 달려 올라가 버렸다. 나의 눈에는 놈의 예상치 못한 이런 감정적 반응들이 무척 신기했던 것 같다. 위에 있는 야옹군의 사진도 사실은 놈의 모습을 남기기 위해 찍은 것이 아니라 장난하느라 찍은 것이었다.


   나는 고양이가 울던 그날 밤 후회도 되고 걱정도 되는 마음에 잠자리가 편치 않았다. 어쩌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녀석은 역시 사나이였다. 몇시간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나를 찾아왔다. 그 당시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볼 때 녀석은 그런 나에게 다시 올 정도로 항상 사람의 어루만짐이 필요했고 사랑이 필요했었다. 이후로 나는 그놈에게 다시는 그런 장난을 하지 않았다.

  

   고양이의 성숙. 드디어 때가 왔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중간 크기였던 이놈이 이제는 덩치도 커지고 성숙한 티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나에게 십여년이 걸렸던 사춘기가 이놈에게는 몇 달만에 닥친 것이다. 이놈은 주변의 암컷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어느날은 밤에 방에서 잘 놀던 놈이 별안간 뛰쳐나가길래 나는 주변의 경쟁자가 근처에 있나하고 밖에 나가 보았다. 그런데 거기에는 가끔 보이던 암고양이가 사뿐사뿐 걸어가고 있었고 이 놈은 그녀의 엉덩이를 침을 흘리며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나는 이놈의 엉덩이와 그뇬의 엉덩이의 흔들림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런데 정말 달랐다. 비록 미세한 흔들림이었지만 그뇬의 엉덩이는 분명히 좌우로 요염하게 흔들리고 있었고 걸음걸이의 자태도 이건 수컷놈의 것과는 분명히 달랐다. 역시 고양이의 눈은 밝았다. 그 미세한 흔들림 속에서 요염함을 느끼다니. 순간 나는 생각했다. 저놈이 인간의 흔들리는 엉덩이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저놈 눈에는 아마도 내가 침흘리며 바라보는 아가씨들의 통통한 엉덩이의 요염한 흔들림은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과격한 흔들림으로 보일 것이다. 두 수컷의 취향은 분명 달랐지만 뭔가 해결되지 않는 공통의 원초적 문제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그놈을 같은 수컷으로서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놈도 나를 이해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영리한 그놈은 눈치는 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후로도 그놈은 아기울음 소리를 내며 그 암컷에게 구애를 하는 것이 눈에 띄곤 하였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번번이 퇴짜를 맞는 것 같았다. 나는 한심해서 한소리 하곤 했다.

   “에이 병신아 아줌마나 따라 다니고 있냐?”

그 암고양이가 새끼들을 데리고 다니던 것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놈은 그럴 때마다 내 눈치를 보며 내게로 오곤 했다.


   한달, 두달, 세달... 시간이 가면서 놈은 몸이 금방 자라났다. 그리고 놈의 구역도 넓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에 비례해서 녀석의 얼굴의 상처도 늘어났다. 나는 물론 이 놈의 싸움에 절대 간섭하지 않았다.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는 대신 싸우고 들어온 날은 상처가 빨리 아물도록 더 많은 통조림꽁치를 주었다. 그리고 어느날인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전혀 보이지는 않았지만 근처 이층집 베란다에서 두 마리의 고양이가 맹렬하게 사투를 벌이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놀란 것은 그중 한 놈의 목소리가 분명히 우리집 누렁이놈의 소리였던 것이다. 그 악의와 증오에 찬 울부짖음과 물어뜯고 할퀴는 소리에서 싸움의 치열함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소리로 보니 둘 중 어느 누구도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저 경우 해결책은 뻔한 것이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해결될 수밖에 없다. 나는 '야옹군!'하고 몇 번 불러 보았다. 싸우는 소리가 잠시 잠잠해졌다. 그러나 다시 맹렬한 싸움은 곧 재개되었고 나는 잘 싸워라하고는 그냥 집으로 들어와 버렸다.


   그리고 녀석은 다음날 아침에야 들어왔다. 그런데 나는 녀석의 머리가 직경 3센티도 넘게 찢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고양이 머리크기를 감안하면 이것은 굉장한 치명상이었다. 나는 이놈이 죽을놈인지 살 놈인지 보려고 먼저 눈빛부터 살폈다. 다행히 녀석의 눈빛은 멀쩡했다. 이놈이 이정도라면 상대방놈도 만만치 않은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데려갈까 생각도 했지만 그대로 두기로 했다. 새살이 돋는 약인 마데카솔인가 하는 것을 발라주였고 붕대를 붙여주었지만 녀석은 불편한지 붕대는 곧 떼어내어 버렸다. 나는 이놈의 회복을 위해 며칠간 특식을 예전의 두배 이상으로 주었다. .............. 그리고 얼마의 시간후, 언제 다쳤냐는 듯싶게 상처는 완전히 아물었다. 커다란 직경의 상처는 날이 갈수록 그 크기가 작아졌고 점점 가죽이 중심으로 오무라들더니 거짓말처럼 직경 3센티가 넘게 둥글게 드러나 있던 생살은 드디어 하나의 점처럼 작아졌고 드디어는 완전히 사라졌다. 정말 고양이의 자기치유력, 생명력은 놀라웠다. 이후 고양이의 싸움은 끝이 났다. 누가 이겼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상처나서 돌아온 적도 없고 싸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이녀석의 덩치가 거의 다 자랐는데 내 안집 아주머니는 호랑이라는 말로 그 크기를 표현할 정도였다. 분명 이 녀석은 그 골목의 실력자로 성장한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고 가을이 되면서 날씨가 점점 쌀쌀해져 갔고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나는 여름처럼 문을 열어놓고 잘 수가 없었다. 나는 할 수 없이 놈을 위해 문을 살짝 틈이 나게 닫아놓았고 녀석은 그 사이로 예전처럼 드나들 수 있었다. 그러나 곧 겨울이 오면서 나는 문을 바람하나 안 들도록 꽉 닫아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더 이상 그 놈은 내방에 들어올 수 없었다. 방으로 들어오지 못한 녀석은 밖에서 울며 나를 불렀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나는 꾀를 하나 내었다. 당시 살던 집은 옛날 구조로 다락이 있었고 거기에 작은 다락창이 담위에서 1.5m정도 거리에 있었다. 나는 담위에 있는 녀석을 손으로 들어서 그 창을 통해 다락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방에 들어가서 다락문을 열고 안에 있는 녀석을 불렀다. 들어오는 방법을 알려준 셈이다. 그러나 창문은 작았고 담위에서 창문안으로 점프해 들어가는 것은 아무리 날렵한 고양이라도 쉽지 않아 보였다. 그날 저녁 나는 돌아와 문열쇠를 여는데 평소와 달리 녀석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하며 방문을 연 순간 나는 방안에서 나를 보며 반갑게 야옹하는 커다란 누런 고양이 한 마리를 볼 수 있었다. 그것으로 그놈과 나의 겨울걱정도 다 해결되었다.  


   그러나 큰집 작은 집을 드나들며 행복한 생활을 하던 야옹군에게 진짜 불행은 그 다음부터 시작되었다. 첫 번째 불행은 앞집 아주머니의 이사로 비롯되었다. 옛날식 건물을 헐고 다가구주택을 새로 지을 계획 같았다. 이사하자마자 옛집을 헐어버리는 공사가 시작되었고 곧 옛집은 자취를 감춘 채 부서진 벽돌과 쓰레기만이 남게 되었다. 그날 저녁 내내 녀석은 헐려진 집 주위를 돌며 울어댔다. 그러나 며칠 후 녀석은 곧 안정을 되찾은 것 같았다. 무엇보다 여전히 자신이 돌아올 수 있는 또 다른 따뜻한 집이 아직까지는 남아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내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나도 언젠가 이 고양이를 두고 떠나야 하고 그것은 이 일보다 훨씬 더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그때는 이 녀석이 기댈 사람이 아무도 없을테니까. 그렇게 되면 이 놈은 사람들의 미움을 받으며 쓰레기통에 모든 음식을 의존해야만 하는 완전한 도둑고양이가 될 것이 너무나도 뻔했다. 그리고 얼마후 그 아주머니가 지나는 길에 나의 방을 찾아와서 고양이가 궁금하다며 보고 싶다고 했다. 때마침 녀석은 내방에 있었다. 나는 녀석을 그 아주머니 앞으로 데려가려 했다. 그러나 녀석은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완강하게 자신의 옛주인에게 가기를 거부했다. 아마도 자신을 억지로 데려갈까봐 겁이 났던 것 같다. 아니면 이미 자신을 여러번 버렸던 옛주인이 미웠는지도 모른다. 아주머니는 섭섭해 하면서도 그래도 보살펴주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라며 나에게 고맙다는인사를 하고는 가버렸다.

 

   나는 이후로 녀석을 볼 때마다 조금씩 걱정이 들었다. 나중에 나까지 이사를 가면 녀석은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물론 곧 적응을 하고 혼자 사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유난히 사람을 좋아하고 정에 굶주려 하는 이 놈에게 그 과정들은 견디기 힘든 고통의 시간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계속 여기에 살지 않는 한 예정된 일이었다. 사실 나에게 있어서도 다른 곳으로의 이사는 오래전부터 계획된 일이었다. 나는 그즈음에 다른 곳에서 열심히 이사할 곳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놈을 좇아내고 미리 적응훈련을 시킬까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어치피 이 놈은 이제 곧 도둑고양이가 될 것이다. 언제부터인가가 문제일 뿐.


   그리고 1월에 나는 드디어 이사할 곳을 찾아서 계약을 마쳤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나는 내심 그 아주머니가 고양이를 데려갈 수 있기를 바랬었다. 그러나 그것은 될 수 없는 일임을 알고 있었다. 나역시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그놈은 결국 이곳으로 다시 돌아 올 것이다. 내가 이 녀석을 자루에 담아 억지로 데려간다 하더라도 놈은 결국 어떻게 해서든 먼길을 돌아올 것이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 골목 주변은 녀석이 어린시절부터 자란 곳이고 목숨건 치열한 싸움을 통해 다져놓은 자신의 모든 것이라는 것을. 새로운 곳으로의 이사는 곧 이전과 같은 치열한 싸움을 다시 되풀이해야 하는 것을 의미했다. 녀석은 그 싸움보다는 다시 옛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나는 결국 고양이를 두고 떠나기로 결정하였다. 그것은 무척 괴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도 나는 그렇게 해야 했다. 그 녀석을 데려간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녀석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일 뿐이다.  


   이사하기 전날 나는 녀석에게 최대한 많이 먹였다. 당분간 충분한 먹이확보가 곤란할 것이다. 더구나 때는 한겨울이었다. 내가 짐을 나르는 동안 녀석은 다행히 근처에 없었다. 몇 잡동사니만 남기고 나는 명륜동으로 이사를 했다. 나중에 안집 아주머니에게 들으니 나머지 잡동사니를 아주머니와 이사올 사람들이 치우려고 하자 고양이가 들어와서 못치우게 울고 난리를 피웠다한다. 그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그것은 분명 잔인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위로해야만 했다.


   이후 나는 이사한 곳에서 바쁘게 생활을 계속했고 가급적 그일을 잊으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그 당시의 여러가지 일들로 바쁘고 힘들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나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사 후에도 녀석을 두 번은 더 볼 수 있었다. 나는 가끔 봉천동의 친척집에 갔었다. 일부러 나는 예전에 살던 골목을 통해 걸어가곤 했다. 혹시라도 녀석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그러던 어느날 밤, 그 골목을 걸어가고 있을 때, 나는 어두운 골목에 그림자 몇 개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나는 녀석을 불렀다. 그러자 주차된 한 승용차 아래에서 원망에 찬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분명히 매정하게 자기를 버리고 떠난 부모를 원망하는 아이의 원망에 찬 울음소리였다. 나는 녀석을 계속 불렀지만 녀석은 원망스런 울음소리만을 내며 차 아래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 앞에 앉아서 녀석을 부르며 계속 기다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녀석은 조용히 차 아래에서 걸어나와 나에게 얼굴을 비벼댔다. 나는 예전에 꽁치통조림을 사던 슈퍼로 달려가서 통조림을 사들고 왔고 공사중이던 건물 아래로 녀석을 데려갔다, 녀석은 아무 소리없이 통조림을 먹었다. 짧은 재회의 순간이었다. 나는 곧 떠나야 했다. 녀석은 자신의 구역 경계선까지 나를 따라 왔다. 거기에서 애처롭게 울기만 하고 더 이상은 따라오지 못했다. 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곳은 놈의 고향이고 이제 거기에서 죽어야만 한다. 나는 아예 놈을 다시는 안보는 것이 놈을 위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부터 두 번째 만남은 몇 달 후 여름에 다시 이루어졌다. 그 달에 나는 몇 번 예전골목으로 다녀보았지만 나는 녀석을 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은 그 골목길을 가다가 어느집 열려진 대문안에서 무엇인가 확 빠르게 지나가는 두 개의 물체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순간 ‘야옹군’하고 부르고 그 집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대문안에 들어서서 물체가 지나간 방방을 바라본 순간 멈추어서 뒤돌아보고 있는 누런 야옹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 담위에는 또다른 검정고양이 한 마리가 야옹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놈이 드디어 동족 친구를 갖게 된 것이다. 나는 가까이 가서 녀석을 쓰다듬으며 녀석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이제 좀더 의젓해져 있었다. 더 이상 나의 다리에 몸을 비비지도 않았다. 나는 그 행동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녀석과 나는 조용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나는 녀석의 달라진 눈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예전에 내가 보았던 야옹군의 눈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제 어떤 감정의 덩어리들이 배제된 생존경쟁의 밀림속 한가운데 있는 한 마리 야생동물의 눈이었다. 녀석이 자신이 인간이 아닌 다른 보통의 도둑고양이들과 같은 존재임을 깨닫고 이러한 눈빛을 갖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었는지 나는 직관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슈퍼로 달려가서 통조림을 하나 사들고 와서 열어주었고. 녀석은 조용히 그것을 먹었다. 그동안 야옹군의 동료였던 검정고양이는 멀리 담 위에서 이 이상한 장면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


   나는 어쩌다 우연한 인연으로 한 고양이를 알게 되었다. 그 굶주렸던 녀석은 어느 날 내게 작은 도둑고양이로 다가왔고 그리고 나의 동생이 그리고 친구이자 동거자가 되었다. 그놈과의 6개월간의 동거 그것은 내게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한 고양이에게는 어린시절의 거의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그 녀석은 어쩌면 고양이로서는 드물게 너무 인간을 좋아했거나 아니면 인간과 자신을 동일시했다. 그것은 어쩌면 그 자신에게는 필연적인 비극의 출발이었다. 어쩔 수 없이 새롭게 맞이해야했던 환경에서 그 녀석은 자신이 인간이라는 종족과는 다른 존재임을, 아니 어쩌면 다 같이 존중받을 영혼을 가진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다르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임을 깨달아가며 고통을 겪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또한 인간이라는 존재가 다른 어떤 동물보다도 그리 특별할 것도 없으면서 오직 자기오만과 위선으로 가득 찬 이기적인 존재였다는 사실을 깨달아가면서 오래도록 괴로워해야 했다.


   이후 나는 오랜 동안 그곳에 가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녀석의 기억도 많이 잊혀져 갔다. 그러나 그러다가도 간혹 녀석의 험상궂은 얼굴이 떠오르곤 했다. 그리고 일년이 넘은 후 다시 그곳에 몇 번 가게 되었을 때, 다시 나는 돌아가는 먼 길을 택해 예전에 야옹군이 잘 다니던 골목길로 다니곤 했다. 혹시라도 나의 옛친구를 다시 보게 될지 모른다는 바램에서. 그러나 나는 비슷한 모양의 몇 고양이를 볼 수는 있었지만 누런털의 나의 옛 친구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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