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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廣島 : 우연히 맺어진 인연, 때묻지 않은 자연과 사람이 있는 곳 

        광도는 여수에서 약 70km 정도 떨어진 거문도와 나로도의 중간정도의 바다 한간운데 위치한 작은 섬이다. 마을 주민은 8명이며 섬의 길이가 500m를 넘지 않는다. 섬의 주변은 상당히 험한 갯바위로 둘러싸여 있어서 위로 올라갈 수 있는 해안이 몇 군데 되지 않는다. 이러한 구조로 인해 이곳은 어자원이 예로부터 풍부하며 낚시꾼들에게는 돌돔 낚시터로도 아주 유명한 곳이다. 험한 바위길을 따라 섬의 6부-7부 능선 사이에 위치해 있다. 워낙 섬이 험하기 때문에 생활공간마저 그나마 얼마되지 않는다. 사진에서 보이는 밭은 사실은 예전에 집터였던 곳이다. 과거 이곳은 거의 사십호에 이르렀고 초등학교까지 있었던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약 십호 정도만이 남아 있고 그나마 몇 호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마을은 섬의 중턱에 위치해 있어서 바다가 한참 아래로 내려다 보인다. 2년전보다 마을의 수풀이 더 우거져서 마을아래 자연방파제에서도 마을을 알아보기가 더 힘들어졌다. 마을 위쪽은 옛 초등학교터가 있으며 그 위로는 너무 풀과 나무가 우거져서 옛 오솔길이 거의 사라지다시피해 산위로 오르기가 매우 힘들다. 마을 사람들의 활동공간은 이 작은 마을과 여기서부터 이어진 방파제까지의 좁고 험한 바위길 150m정도 그리고 바다와 갯바위뿐이다.

 

     나는 인천 앞바다의 이작도에 다녀오던 길에 우연히 섬여행을 좋아하는 나와 비슷한 나이의 한 남자로부터 이 섬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도 가본 적은 없었고 군대시절의 동기가 근무하던 곳이라며 그는 이 섬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나는 그해 여름 배낭하나를 메고 이곳을 찾아갔다. 전복과 낙지가 마을앞에서도 넘친다던 그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지만  이곳에는 때묻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자연과 맞서 의연히 살아가는 건강하고 때묻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게 되었고 서울로 돌아와서도 그곳을 잊을 수 없었다. 아름다운 석양의 노을과 그 푸른 바다위에 떠있었던 평도 소평도의 모습, 바다 한가운데를 자유롭게 노닐던 고래들, 아무런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있지 않지만 의연히 대자연속에서 어우러져 바다와 함께 살아가던 노인들을.... 결국 그해 나는 두번이나 더 그곳을 찾게 되었다. 처음에는 경계하던 노인들도 비록 크게 내가 해드린 것은 없지만 같이 바다일을 하는 시간을 통해 점점 인간적으로 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일은 3년전 가을에 일어났다. 이틀의 시간을 얻은 나는 여수로 내려갔고 잘 아는 한 낚시점 사장의 도움을 얻어 새벽 2시에 광도로 가는 낚시배를 탈 수 있었다. 사실 이날의 목적은 단지 여행삼아 여수 앞바다를 돌아보고 몇 낚시인들틈에 끼어 가을 도미 한 마리나 잡아볼까하는 것이었다. 나는 미리  예전에 묵은 적이 있던 송씨 할아버지댁에 전화를 해서 몇가지 필요한 물건들을 사서 드릴 요량으로 아침에 주낙을 보러 나온다는 할아버지와 광도 뒤편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그런데 그날 날씨가 문제였다. 여수에서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출발하였지만 막상 외해로 나가자 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작은 동력선은 이리저리 흔들리고 창밖은 배의 지붕보다 높이 파도가 일렁이고 있었다. 나는 두려움을 잊기위해 잠을 청했다.      ............   얼마나 지났을까 요동하던 배가 잠잠해진 가운데 나는 잠에서 깨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둑한 새벽의 빗줄기속에 광도가 앞에 떠 있는 것이 보였다. 배는 광도의 뒤편에 있었다. 나는 일단 선장의 말대로 한 갯바위에 내렸다. 비바람은 상당했다. 여행시 항상 가지고 다니는 비상식량장만용 낚시대를 겨우 드리울 수 있었지만 고등어들만 난리를 칠 뿐이었다. 그때 나는 어스름한 오른편 바닷가로 작은 나룻배가 높은 파도사이에서 출렁거리며 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송씨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장에게 물어서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전날의 약속이 그렇게 후회될 수가 없었다. 그 험한 조류와 파도를 헤치고 나온 송씨 할아버지 내외. 나는 기상상태가 워낙 나빠 안 나오실 것으로 생각하고 나중에 마을 방파제로 가서 드리려고 생각했었는데 그분들은 고마움의 표시로 생선이라도 몇마리 주려고 주낙을 거두려 나온 것이었다.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집채만한 파도 사이를 칠순노인내외가 조그마한 나룻배를 타고 내눈에 보였다 안보였다를 반복하며 비바람속에서 움직이던 그때의 광경.....  잘못하면 노인 두분을 바다에서 장사치르게 만들 뻔 하였던 것이다. 다행히 그분들은 무사히 섬으로 돌아갔고 나도 서울로 그날 무사히 올라왔지만, 이날의 일은 나에게 광도를 더욱 특별한 곳으로 만들어 버렸다.

 

    올해도 나는 그곳을 찾았다. 달라진 것은 전혀 없었다. 내가 찾던 송씨 내외 두분은 아쉽게 잠시 여수로 나가계셨고 대신 젊은 송씨 내외가 다시 돌아와 광도의 주민은 여전히 여덟분이다. 짧은 시간을 그곳에서 보낸 후 나는 아쉬운 작별속에 그곳을 떠나와야만 했다. 이제 광도의 교통편은 더욱 악화되었다. 그간 운행되던 새마을호가 목포관할로 통합되면서 연락선이 일주일에 한번 오기도 힘들다. 나는 여수에서 온 낚시배를 타고 광도를 나와야 했다. 나에게 있어서 광도는 단순한 바람쐬는 장소는 아니다. 거기에는 단순한 섬 이상의 무엇이 있다. 그곳의 바다는 왜 나에게 다르게 다가오는 것일까? 바람이 심한 날이면 나는 그 험한 바위길을 타고 올라가 마을에서 바라보던 바다의 물결을 생각한다. 바람이 잔잔한 맑은 날에는 나룻배를 저어 홍합을 따러 나가던 노인들의 모습과 멀리 조용히 떠있던 남도의 모습들이 떠오른다. 나의 광도로의 여정은 내년에도 반복될 것이다. 아마도 내가 살아있는 한 그리고 거기에 사람이 있는 한 나는 그곳을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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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Hwayong, Kim     khy906@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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