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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라체어이야기

   하라체어는 2003년 김선환(하라테크 대표)에 의해 발명된 세계최초의 분리형좌면의자이다. 의자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거의 비슷하게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인체의 구조와 자연스럽게 조화되는 분리형좌면의자가 수천년이 지나서야 실용화되었다는 것은 무척 아이러니하다. 가까운 미래에 전세계의자의 절반이상은 하라체어스타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글, 사진: 김화용

 

 

 

 

 

 

 

 

 

 

 

Leica M3, 35mm Summicron f2

 

   이것은 어쩌면 제조업분야의 한 천재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기존의 인간의 사고를 뛰어넘는 가구산업의 획기적 혁명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5천년이 넘는 의자의 역사에서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낸 것은 비록 화려한 조명을 받지는 못했다하더라도 인류의 역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의자에 앉는 습관은 이미 기원전 2850년경 고대이집트에서 널리 퍼져 있었고 이후 수많은 발전을 이룩해 왔지만 하라체어(하라테크사 개발)의 분리형좌면이라는 신개념의자는 한번도 제대로 시도돼 본적이 없었다. 그것은 의자산업에서 분명하면서도 중대한 혁명이었다.

    나의 라이카갤러리에서 어떤 제조업분야의 하나를 싣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그러나 개인적 관계나 관심을 떠나 어떤 분야에 혼을 바친 한 천재이자 장인의 이야기를 담고 그것이 발전해 온 과정 그리고 현재의 모습들을 담아보는 것은 라이카의 이야기를 담고 나누는 것만큼이나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고정화된 사고를 깨고 이러한 혁명을 만든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하라테크 김선환대표         Leica M3, 35mm Summicron f2

    그의 첫인상은 제조업체의 사장의 풍모라기보다는 학자에 가까웠고 실제 그와의 대화에서 철학적 주제는 빠질 수 없는 대화거리이다. 그러한 그의 철학적 사고가 그가 개발하고 제조하는 제품에 투영될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할 것이다. 사실 '하라'라는 명칭속에도 이미 우리민족의 정신이 깃들어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놀랄지도 모른다. 자칫 일본어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라'는 고대한국어로서 하(태양)+라(者), 즉 태양의 아들이란 의미이다(한국상고사 169쪽). 하라(태양의아들, 즉 한국인의 의미)+체어(의자)가 합성된 하라체어는 그 어감이 일본어같아서인지 하라가 순수우리말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에게 친근한 발음으로 일본시장개척에 상당히 긍정적 효과를 불어넣는데도 일조하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잘 인정하지 않는 이상한 습성이 있는 듯 하다. 2000년대 초반 하라체어는 이렇듯 혁명적인 제품을 개발하고도 알려진 브랜드가 아니라는 이유, 그리고 보통의자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국내에서 소비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때 하라테크의 경영진은 일본을 통해 돌파구를 열기로 결정하였는데 이러한 시도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일본에서 하라체어는 국내 어느 의자보다도 그 독자적인 기능성과 품질을 인정받게 되었고 수년이 지난후 일본에서의 명성을 기반으로 국내시장에서 그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최근 기능성의자의 원조국이라 할 수 있는 독일에서조차 하라체어의자에 관심을 갖고 하라체어의자의 수입을 시작했고, 러시아 또한 오래전부터 관심을 갖고 수입의사를 타진해 왔으며 드디어 2012년 러시아는 하라체어의 해외 주고객중 하나이다.

   국내기능성의자시장의 발전은 1997년 듀오백의자(당시 해정산업 제작)로부터 시작했다. 당시 해정산업(현 듀오백코리아)은 독일 그랄사(Grahl)로부터 듀오백라이선스계약을 맺고 듀오백의자를 생산 국내에 공급하기 시작한다. 이후 특허효력이 만료되기까지 20년동안 듀오백의자는 기능성의자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며 국내의자시장을 주도해 왔다. 듀오백코리아가 국내 기능성시장의 지평을 열고 국내 소비자들의 의자생활을 한층 풍부하게 해준 기여는 분명 확실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많은 의자제조업체들이 듀오백의 특허소송에 의해 침몰했다는 것, 그런데 그 특허의 내용이 다소 모호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한편으로는 또다른 평가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듀오백의자와 유사한 특허의 원조는 멀리 1952년 미국의 키드니패드로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U.S. PAT: 2.858.876). 당시 미국해군청의 위탁을 받아 웨슬리 등에 의해 출원된 키드니패드는  함선이나 항공기 승무원의 안전한 착석과 운전을 위해 분리된 2개의 등받이를 활용하는 의자를 제작하려는 의도에서 개발되었다. 그러나 듀오백의 원조형태를 보이는 이 키드니패드는 널리 상용화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재판과정에서는 그보다 앞선 특허도 등장했는데 1911년 12월 5일 등록된 미국특허 1,011,026이 일본세관정에 의해 선행공지특허로 인정되기도 했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듀오백의자의 발명자는 독일의 슈톨레로 알려져 있고 듀오백의자의 실사권(특허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권리)를 해정산업(현 듀오백코리아)에 판매한 회사는 독일 그랄사(Grahl)이다. 그랄사는 척추관련 의료기기회사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간 국내의 수많은 중소 의자제조업체를 얽어매었던 대상 특허의 내용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들이 있다. 하라체어 또한 그러한 분쟁에서 비껴가지는 않았다. 하라체어가 본격적인 일본수출을 열어가고 있던 2007년 듀오백코리아는 동경세관에 하라체어를 상대로 수입금지신청을 요구한다. 어떻게 보면 같은 민족끼리 그럴 수 있나 할 수 있겠지만 철저한 약육강식시장이고 거기에서 살 수밖에 없는 기업의 생리상 피치못할 상황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동경세관장은 특허비침해의 결론을 내리면서 아울러 본건특허발명이 미국특허 1,011,026에 기재된 발명과 사실적으로 동일해 침해를 다툰 특허내용은 무효라는 판정(문제의 특허내용은 이미 1911년에 미국에서 등록된 특허내용과 동일하므로 누구가 사용할 수 있는 특허라는 뜻)을 내리기에 이르렀고, 결국 하라체어의 일본수입금지신청은 기각되었다. 국내 특허관련소송의 설명들에 비해 상당히 전문적인 내용을 갖는 동경세관장의 의견보충서는 어쩌면 청산되지 않은 역사적 이유로 항상 적대적 감정의 DNA를 일본에 대해 가질 수밖에 없는 우리지만 그들의 법률적, 논리적 정교함에 부러움마저 갖게 한다.

   그러나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고 국내에는 국내의 법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쩌겠는가 정교하게 발달된 일본의 특허관련법정과 그렇지 못한 우리의 법정은 다른 것을. 현재 국내에서 이완 관련한 민사소송은 대법원의 판결을 남겨두고 있으며 이와 별도로 형사관련소송은 현재 고등법원판결(수원지방법원 제4형사부 2011노3136 특허법위반판결)에서 하라체어의 특허침해에 대해 무죄판결(특허본질내용과 무관하게)이 내려진 상태이며 최종 대법원의 확인만이 남아있는 상태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상당부분 법률적이고 세부적 내용들이 다뤄져야 하므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별도의 페이지에서 다루고자 한다. 다음으로 나와 하라체어의 개인적 인연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와 하라체어의 인연은 약8년전으로 돌아간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어떤 의자를 얻게 되었다. 그것은 허리,골반과 남성 전립선건강에 탁월한 것으로 막연히 들었는데 그 의자는 당시로서는 기묘하게도 좌판이 둘로 갈라진 의자였다. 그 의자는 승합차에 실려 그 의자의 회사원으로 보이는 양복을 입은 두 사람에 의해 내 눈앞에서 신속하게 조립되어졌고 나는 별생각 없이 그 의자를 3년정도 썼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나는 집근처의 한대학대학에서 모종의 학위과정을 2년간 하게 되었는데 하루에 거의 12시간 이상을 책상앞에서 책을 보고 보고서를 작성해야하는 혹독한 과정이었다. 그러한 시간이 지속되다 보니 학교에 있는 일반의자생활에서 오는 피로감이 상당했고 급기야는 경증의 디스크증상까지도 오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불편함은 집의 책상생활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 이유를 생각하다 나는 그 이유가 연구실에서 사용하는 의자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되었고 내리고 집에서 사용하던 그 갈라진 하라체어를 연구실로 가져와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놀랍게도 이후로 나의 불편함은 사라졌다.

   2년의 과정이 끝날 즈음 나는 당시 나를 지도하던 은사님이 입법관련 기관인 OO에서 기관장으로 OOOO처라는 새조직을 창설하는 일을 돕기위해 급작스럽게 공무원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무처에서 제공해준 의자는 디자인이나 품질에서 꽤 괜찮은 고가의 의자였으나 며칠 후부터 허리가 다시 불편해지기 시작하였다. 결국 서무담당에게 이야기 하고 나는 다시 하라체어를 사무실에 가져다 두고 사용하였다. 나의 일과는 학교에 있을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침 7시에서 8시 사이에 출근하였고 퇴근은 10시나 늦게는 11시에 하기도 하였다. 12시간이 넘는 시간을 사무실에 있었고 그 긴 시간 나를 의자생활의 피로로부터 지켜준 것은 바로 하라체어였다.

Leica M3, 35mm Summicron f2

* 그리고 나의 라이카 또한 사무실책상옆의 옷걸이에 아무렇지도 않게 몇 달동안이나 걸려 있었다. 아무도 이 골동품 같은 다 낡은 카메라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2007년 겨울은 유독 눈이 많은 해였다. 눈이 펑펑 내린 날 아침 나는 사무실을 나와 몇 컷의 사진을 담아두었다. 윗 사진들은 지금은 사라진 의원동산의 눈쌓인 정경이다.

 

   기관에서의 일을 마치고 돌아온 후 나는 소모품인 의자의 하단 스프링을 교체하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내가 사용하고 있는 의자의 이름 '하라체어'로 검색을 했다. 다소 놀랍게도 회사가 그대로 있었다. 최초에 통화를 나누었던 젊은 직원이 몇 달후 회사를 그만두었단 소리를 듣고 과연 그 회사가 남아있을까 의문을 가졌었는데 기존의 관념에 굳어버린 일반인들이 받아들이기에는 파격적인 디자인을 가진 회사가 보수성이 강한 한국시장에서 살아남았던 것이다. 나와 하라체어의 진정한 인연은 그래서 다시 시작되었던 것이다. 김선환대표와의 우연한 만남 그리고 인연은 내인생에서 유비,관우,장비가 맺은 도원결의와도 같은 의미를 갖는 것인데 나는 페이지를 달리해서 이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것이다.

 

Leica M3, 35mm Summicron f2

 

  하라체어 김선환사장의 천재성은 다양한 형태로 하라체어의자에 투영되어 있다. 비록 디자인전문가가 아닐지라도 기능적인 관점에서의 인체공학적 설계와 미적관점에서의 균형감과 선의 연결은 그 독창성과 기능성면에서 전문가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회사설립초부터 현장에서 직접 의자를 구상하고 제작하는 전과정을 만들었고 마케팅까지의 전과정을 지켜본만큼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유수의 해외 유명브랜드와의 경쟁을 위해 의자의 디자인은 일정부분 전문디자이너와의 합작방식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해외브랜드를 모방해 쉽게 의자를 디자인하는 업체들도 많지만 하라체어는 그간 독창적인 디자인을 고수해온만큼 하라체어의 디자인세계가 개성적이면서도 기능적으로 뛰어난 품질로 올라설 것을 예측하는 것은 너무 어렵지 않다.

 

Leica M3, 35mm Summicron f2

   지금 이시간에도 김포시 양촌면 누산리의 하라테크 공장에는 숙련된 기술자들이 정교하고 숙련된 동작으로 하라체어의자를 제작하고 있다. 이는 마치 과거 수십년전 라이카공장에서 수개월에 걸쳐 철저하게 훈련된 기술자들이 라이카를 제조하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물론 당시로서는 엄청난 고가의 카메라를 정밀하게 조립하던 것과 동등하게 볼 수는 없겠지만 하라체어가 일상생활을 위한 의자부품들의 일부를 숙련된 기술자들이 수공으로 제작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유사한 점들도 많다.

   거기에다 하라체어는 아직 진행형이다. 아니 이제 시작일뿐이다. 하라체어의 기술자들은 30~40대로 아직 젊고 세월이 감에 따라 이들은 더욱 숙련될 것이고 제품의 인체공학적, 미적 완성도는 계속 높아질 것이다.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국내 금속소재산업이나 주물, 금형수준이 김선환사장의 이상을 따라주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만일 일본정도의 수준의 주물, 금형기술을 가지고 하라체어의 부품을 공급해줄 수 있는 기업이 국내에 있었다면 아마도 하라체어는 지금쯤 세계의자시장을 호령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어쩌면 국내에서 이런 의자가 발명되었다는 것은 한국인들에게는 무척 행운이다. 합리적인 가격에 훌륭한 기능성의자를 언제어디서든 구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라체어는 제조 초기부터 일본에 수출되고 있으며 일본에서 상당한 고가에 판매되고 있다. 대표적 수출상품인 니체2의 일본판매가격은 59800엔이었다. 이는 엔화환율을 적용하면 무려 80만원이 넘는 금액이다. 오래전부터 수출된 태국에서는 유명백화점 가구부의 핵심부를 차지하고 있으며 판매되는 가격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넘는다. 현재 하라체어는 기존 해외시장인 일본은 물론이고 고급기능성의자의 선조라 할 수 있는 독일시장, 러시아시장에서도 뜨거운 호평속에 매출을 신장중이다.

 

사진출처: 2012 베이징모터쇼 홍보자료

   하라체어가 가지고 있는 의자분야의 독보적인 기능성좌면기술은 이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드디어 하라체어의 분리형좌면 개념은 관련산업으로까지 파급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12년 베이징모터쇼에서 람보르기니 출품자동차 우루스에서 보인 분리형좌석이다. 람보르기니의 이러한 디자인이 어떻게 시도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기능성의자 시장의 발전에 영향받았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나 하라체어의 분리형좌면의자는 직접적으로 디자인적 영감을 주었을 것으로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은 너무나 당연히 예측될 수 있는 변화였다.

   그러나 등잔밑이 어둡다고 세계적으로 가장 앞서 있으며 이미 국내외(미국,일본 등) 특허까지 가지고 있는 기업이 국내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국내 자동차업계가 이런 변화의 선두자리를 빼았긴 것은 상당히 아쉬운 일이다. 하라체어는 분리형좌면의 중요한 핵심기술들에 대한 특허를 대부분 소유하고 있다. 2012년에 하라체어는 지식경제부,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주도의 2012 소재부품기술개발사업에 관심을 갖고 '생체신호 감지기능 및 능동형 액추에이터 구동회로를 포함한 스마트시트 개발'의 컨소시엄 참가를 계획하고 있다. 다행이도 국내 자동차산업에서도 이의 중요성을 인지해서인지 최근 자동차시장의 뜨거운 경쟁속에서 하라체어의 빼어난 기능성좌면기술은 국내 굴지의 자동차회사의 뜨거운 러브콜을 받고 있다. 어쩌면 시기적으로 늦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그 중요성과 활용성에 비하면 늦게 이슈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국내, 해외의 특허를 모두 확보하고 있는 하라체어니만큼 국내자동차산업경쟁력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생소한 분야에 뛰어들어 무언가를 이룬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런데 어려운 제조업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그 기술로 제품생산은 물론 세계시장에 뛰어들언 단기간에 세계의 유명브랜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은 이미 고도화된 현대산업사회에서 전설에 가까운 일이다. 이러한 전설은 라이카의 전설과 마찬가지로 오로지 한 인간의 열정과 창조성으로 가능했다. 그러나 하라체어의 앞길은 아직도 멀고 험하다. 우선 대내외적으로 장기경기불황의 장벽이 놓였다. 거기에 하라체어의 높은 이상을 실현하기에는 국내 금속재질 및 가공기술수준이 중국 등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경쟁국인 독일, 일본에 비해서는 아직 미흡하다. 결국 한 산업에서 명품이 나오려면 주변분야의 기술수준이 다 같이 받쳐주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라체어와 관련업체들은 아직 한참 성장해가는 단계로 기대를 접기에는 너무 젊다. 10년 이내에 국내소비자들은 해외 어디에 내놓아도 부럽지 않은 명품의자를 저렴하게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며 하라체어의자를 사용하게 될 지도 모른다. 눈앞의 이익만을 쫓아가는 근시안적 기업인이 아닌 비전과 철학을 가진 경영인, 젊고 성장하고 있는 기술자들, 이를 뒷받침하는 신뢰받는 하라체어 전문판매점, 협력업체들의 기술적 발전 등, 이 모든 것들이 비록 느리게 나타날지언정 끊임없이 진화하는 환경속에서 어쩌면 이러한 바램은 내 예상보다 훨씬 더 빨리 이루어질 지도 모르겠다.

 

< 일부내용 및 사진출처 >

하라체어 강남전시장  www.haratech.co.kr

하라체어 종로전시장  www.hach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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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Hwayong, Kim     khy906@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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